<철학의 역사 근대중기10> 103회 베네딕투스 데 스피노자 심화 편- ‘자유의 수호자’

2023. 7. 12. 04:28철학의 역사

https://youtu.be/EnEaEEeJOv0

대학 나온 제자는 취업을 거부하고 고독을 환희로 대체(?대치 ?)해가며 우리의 첫책 감정 계단의 일러스트를 그렸고, 거의 생애 최초의 승리를 맛보았다. 지지 않기 위해 청춘의 원석을 돌망치로 쥐어 박았다. 나는 그 고통만을 긍정한다. 나는 감정계단 소개말에 이렇게 썼다. 

세계에 있었으나 미처 깨닫지 못한 철학의 영광을 위한 방송.. 두 남자의 철학수다 철학의 역사편 제 103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네, 반갑습니다. 일상생활의 혁명을 지속하는 매력남, 일지매 똥팔씨 입니다. -인문학도 메뚝씨입니다. -자, 오늘은 스피노자 심화편으로 한번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정계단 얘기하셨네.. 저도 이제 감정 계단을 펴봤지.. 스피노자가 다시 보이더라구.. -그렇죠.. 뭐 염두에 두고 쓴 것은 아닌데.. 감정은 구조화 되어 있다라는 말은.. 우리가 공부를 해야 되는 가장 뚜렷한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이정표를 세우는 데 가장 말초적인 것이기 때문에 감정대로 사는 삶은 예속된 삶이라는 에티카의 그 명제를.. -그렇죠.. 스피노자가 경계했던 삶이죠.. -네.. 명제를.. 인륜사라는 개념이 있어요.. 헤겔의 개념인데요.. 그러니까 인륜의 사가 종교의 역사에요.. 종교사.. 그러니까 가장.. 세계사보다, 역사보다 긴 역사인 것이죠.. 그러니까 인간이 최초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만들어진 역사 중에 가장 큰 범주의 역사입니다.. 인륜사.. 그 인륜사에 따르면 종교는.. 초월성에 대한 우리의 목마름.. 종교는 철학과 연계되어 있다가 분리했다가 다시 연계되는.. 그 과정을 거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연계되는 그 최종심급의 절대정신은 신적인 차원으로 초월하죠.. 왜 이런 말을 하냐면.. 인륜사라는 개념을 우리가 엎어두면.. 감정이라는 구조가.. 우리 동양사에서도.. 아주 오랜 시간동안 구조가 초월성과 연계돼서 맞물려서 돌아갔을 거라고 나는 선언했어요.. 선험적으로 규정한거죠.. 그리고 그 선험적으로 규정한 것 속에서 출발한 겁니다.. 그래서 7정이라는 개념이 감정의 구조 속에 나오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좌3우3 가운데 욕망이 있는 쾌와 불쾌의 구조는.. 1격, 2격, 3격으로 자신의 코나투스.. 그러니까 존재의 애씀.. 있음을 증명하려고 하는 자기보존의 욕망.. 이 코나투스로 승격되고 승격된다.. 그래서 이게 중력의 장이라는 개념까지.. 만들었죠.. 그래서 1중력의 장에 있는 인간은 쉽게 말하면 자기 주변에, 자기 세계에서 빠져 있는 사람입니다.. -유아기적? -네.. 유아기죠.. 그러니까 이 사람은 두 가지 감정밖에 없다고 했어요.. 즐거움과 슬픔.. 즐거움과 슬픔이 이 사람이 자주(?)하는 모든 표상.. 이미지에요.. 그렇기 때문에 언어가 많이 필요 없죠.. -충동적인 것에 좌우되는 거지.. -그렇죠.. 그러면 2중력장으로 간다는 것은 조금더 추상적인 단계로 올라선다는 뜻인데.. 2단계로 오면 이제.. 영향을 미치는 코나투스의 범주가.. 이제는 자기 주변으로 확대되기는 합니다. -나와 관계된.. -네.. 나와 관계된 너가.. 2인칭이 만들어지는거죠.. 그런데 그 너의 차원은 직장과 가정 밖에 없죠.. 현대인의 인간에게.. 그래서 거기서 존재를 증명하려고 하는 인간들이 바로 2격의.. 인간들이고.. -동호회도 있어.. 동호회.. -네.. 비슷해요. 동호회.. 그런데 동호회는 사실은 공적인 욕망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1인칭에 가까워요.. 그래서 동호회에서는 즐거움과 슬픔을 나누지 절대 기쁨과 화를 나누지 않습니다. 화를 내면 동호회는 짤려야 됩니다.. 그런데 직장에서는 화와 기쁨을 나누죠..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일 한다음에 막 화내기도 하고, 열심히 일한 다음에 기쁨의 대가로 성과급을 가지고 가기고 합니다. 그런데 사랑은 없죠.. 직장 동료에.. 사랑까지 가려면 아예 공사의 분리를 차원화해서 3인칭의.. 위격으로 승격해야 되는데.. 그때는 분노라는 에너지까지도.. 감당해야하는.. 것이죠.. 그래서 3단계의 위격으로 가면 인간은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랑은 위험하고.. 그리고 분노도 위험하죠.. 사랑은 위험합니다.. 왜 위험해? 존재라고 하는 있음.. 이 존재라는 있음에.. 존재에너지를 그만큼 많이 소모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하여간 코나투스가 훨씬 더 높은 격의 격정을 위해서 자기의 존재를 바치는 것을 사랑이라고 하죠.. 따라서 사랑하는 인간에게는 목숨값을 지불하는 거에요.. 목숨값을 지불한다는 것은 애 키워보면 아는데요.. 잠을 못잡니다.. 제대로 키우려면.. 잠을 못자요.. 키워보면 알아요.. 잠을 못잡니다.. 그리고 생활이 건강할 수가 없습니다.. 건강하다는 것은.. 이게.. 몸이.. 피로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당연합니다.. 그건.. 그리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애를 키워보면 애를 던져버리고 싶은 욕망이 막.. 들어옵니다.. 거기서 그걸 통제할 때.. 분노를 통제할 때 사랑이죠? 분노를 통제하지 못하면 예속되죠.. 분노에.. 분노에 예속되면 한층 낮아져서 아이를 분리합니다. 분리해서 기쁨의 영토.. 직장에서 자기 존재를 실현하려고 해요.. 그런데 직장에서 만약에 진급에 실패해? 또 하나를 분리합니다.. 그러면 자기 세계에.. 동호회에 가고.. 혼자서 모니터로 게임하고.. 자기랑 맞는 친구한테 연락하고 그 친구도 아주 잘 연락해야 돼요.. 왜냐하면 귀찮아하거든요.. 그 친구가 만약에 진급한다?그러면 안만나줍니다.. 그 사람의 존재력은 2층위에서 열리기 때문에.. 안만나줍니다.. 따라서 외롭죠.. -외로우면 철학책 펴지 뭐.. -그렇죠.. 그래서 다시 외로우면 철학책을 펴면 그게 2단계, 그 위선적인 세계를 넘어서서 3단계로 올라갈 수 있는데.. 대부분 철학책을 피지 않고 원래 갖고 있었던 관성의 표상, 관성의 정서, 관성의 감정들을 그대로.. 쓰레기같은 감정들을 만족하는데 소모하죠.. 다른말로는 망각해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 공상을 통해 망각하기..가 일어나죠.. 보통은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공부를 파는 거에요.. 그 2층에서 밀려난 놈이.. 1층에 오면.. 그때 해야될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거죠.. 그래서 2층으로 올라가려고 하는 게 우리의 취업이라고 하는거고, 그리고 취업을 포기해버리면 1층으로 내려오잖아요? 그러면 이제 3층으로 올라가기 위한 하나의 도약이 되는데.. 그래서 감정계단의 일러스트를 그린건데.. 그리라고 명령한거기도 하고.. 3층으로 올라가야 되는데 이제는 2층으로 올라가는 피로도 감당 못해서 그냥 1층에 머물면서.. 3층을 그리워만 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라는거죠..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동의.. -진짜 쉽게 변하지 않아요.. 그래서 에티카의 마지막 말이 이거야.. 그러나 모든 고귀한 것은 힘들 뿐만 아니라 드물다.. 쉽지 않은 거에요.. 에티카의 마지막 말이에요 이게.. 쉽지 않은 거에요.. 그렇게 쉽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게 드물기 때문에 고귀한 거거든요? 그래서 이걸 이해하면.. 감정의 구조를 이해하면 내가 지금 1층이라는 중력장에 머무르는지, 2층이란 중력장에 머무르는지 어차피 예속되어 있는 거에요.. 1층이 예속되고 2층이 예속되는 겁니다.. 지구에 예속되어 있는 것이 가장 자유로운데.. 3층으로 올라가지 않는 모든 인간들은 예속되어 있는 거에요.. 구속되어 있는 거에요.. 해방을 모릅니다.. 그런데 그걸 아주 잘.. 그 무지한 친구들은 이걸 잘 이용하기도 합니다.. 2층을.. 2층.. 그러니까 직장에서 성공하지 못한건데.. 안한거라고 사기치는 경우가 있어요.. 곤란합니다.. 그래서 상처를 받았다는 것은 기회가 되는 거에요.. 2층에 못올라갈 때.. 나는 애썼는데 못올라가는 경우죠.. 애썼는데 못올라가는 경우에 상처를 받죠.. 이러면.. 아, 기회가 온겁니다.. 이러면. 자유, 해방의 기회가 열린 거거든요? 그런데 최선을 다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것은 재고해봐야 됩니다.. 무엇이든 코나투스를 최대치를 쓴 다음에.. 그다음에 요구를 해야 하는 거거든요? 애써야 하는 겁니다.. 애쓰지도 않았는데 사회 탓하고 삿대질한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사회에 철저하게 예속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사회에 철저한 비용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구요.. 그게 노예죠.. 노예 입니다.. 반항은 노예의 덕목이다.. 왜 반항이 노예의 덕목일까요? 주인의 덕목은 뭘까요? 정신이죠.. 정신입니다.. 이게 헤겔이에요.. 몸이 시키는 대로 하는거죠.. 노예가 이 사회를 긍정할 수 있을까요? -없지.. -없잖아? 내 것이 아니니까.. 그렇죠? 그러면 뭐해? -탓하겠지.. -그렇지.. 그게 반항입니다.. 몸이 막 반항한다? 그러면 나는 노예라는 뜻이에요.. 정신은 뭐에요? 이 세계의 주인이니까.. 이 세계에 어떻게? -관조하겠지.. -네.. 제대로 할건지를 사유하겠죠.. 그래서 주인의 덕목인거죠.. 노예-주인 변증법에서 아주 간단해요.. 그런데 노예가 주인을 어떻게 이겼어요? 그 분노의 몸을.. 몸에 새겼기 때문에 이겼죠.. 주인은 왜 노예한테 졌죠? 노예-주인 변증법에서? 몸의 실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주인이 지죠.. 노동력이라는.. 그것도 기억해야 되는데.. 우리는.. 아, 난 노예야.. 아, 주인 새끼.. 이렇게만 생각한다는거죠.. 반드시 역전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몸을 제대로 애쓴다면.. 반드시 역전이 일어나요.. 그런데 반드시 역전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자꾸 잊어버리죠.. 그러니까 승부를 내기 보다는.. 현재 속에 갇혀있는거죠.. 이게 현전의 감옥이지? 안타깝게도 그렇습니다.. 자, 아무튼 감정 계단에 쓴 이유는 그것이고.. 지금은 살 수도 없는 책이라.. 나중에 나오겠죠.. 제대로 된 책은 부활합니다.. 제대로 된 책은 부활하고.. 그 제대로 된 책은 다른 이름으로 부활할거에요.. 아마도 저는 그건 대화체니까.. 어떤 문체를 살려서 다시 쓰겠죠? 그것은 어떤 과업이니까.. 예속돼.. 직장이라는 카테고리에 예속된 삶이 아니라 조금더 큰 위격의 인간이 되라는.. 어떤 과업.. 제 과업이기 때문에.. 공동의.. 과업이기 때문에.. 그 과업을.. 존재론으로 바꿔야겠죠? 날이 오겠죠 뭐.. 목숨이 붙어 있으면..

-자, 오늘.. 이번 주제는.. 또 정의하면서.. 자유의 수호자..라고.. 스피노자를 정의합니다.. 자유의 수호자.. 이건 에티카 4부 정리 67번 문장으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유로운 사람은 결코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며.. 그의 지혜는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성찰이다.. 이거죠.. 많은 사람을 죽였죠.. 이 말이.. 자유로운 사람은 결코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라는 것을.. 죽음을 생각할 수가 없다.. 할 필요가 없다.. 뭐 이런 뜻이겠죠? 그리고 삶을 생각한다는 것은.. 삶은 존재죠.. 오직 존재론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 자유로운 사람들은.. 제 말로 바꾸면 제대로 살기 위해서 알고자 한다.. 뭐 이런 뜻이 되겠네요.. 질문부터 하고 갈게요.. 똥팔씨한테.. 스피노자는 왜 책 이름을 에티카라고 했을까요? 이 질문.. -제대로 살라는 명령을 넣은거지 뭐.. -그러니까.. 이렇게 하면은 내 뇌피셜이고.. 그러니까 이게.. 저는 공부를 하면서 느낀 바가 뭐냐하면.. 공부라는 철학을 기대거나 인문학에 기대는 사람들의 기초가 참 부실합니다.. 기초가 참 부실하다는 것은 철학의 역사를 제대로 한번 공부하지 않고 전공을 마무리해요.. 왜냐하면 우리는 대학 때 못하잖아? 그렇죠? 그렇지? 그 철학의 역사를 강의할 수 있는 사람이 한국에 몇명 없었는데.. 우리 대학원 가가지고 다행이 그 중에 한명이었죠.. 없었어 진짜.. 그렇죠? 그리스 철학의 역사를 강의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 이야.. 이것도 신기하죠? 그래서 막.. 아무거나 갖다가 막.. 그런데 우리가 배운 바도 많이 틀렸죠? 그래서 제가 다시 하는거죠..많이 틀렸죠.. 아.. 나 까고 싶은데.. 아무튼 많이 틀렸습니다.. 그런데 되게 기초가 정말 부실합니다.. 그러니까 책을 안읽어.. 공부하거나 전공하는 사람도 책을 안읽어.. 이게 문제가 심각해.. 그래서.. 이게 윤리학도 에티카도 이거 안읽어.. 안읽으니까.. 이 번역자나.. 이것에 대한 책을 쓴 사람도 왜 이게 에티카인지를 몰라.. 저는 그게 너무 황당합니다.. 어떻게 이게 에티카인지 모를까? -윤리학이잖아? -그러니까 이게 왜 윤리학일까? -윤리.. 명령이기 때문에 윤리하고.. -성경책.. 뭐 그렇게 할 수도 있죠.. 그러니까 이게 성경.. 바이블을 대체하기 위한 책으로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건 맞는거죠.. 정치적인 의도로.. 그런데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이게 기초를 공부하다보면.. 철학.. 칸트 이전의 철학의 분류 방식을 알면 알 수 있어요.. 쉽게 추측 가능하죠.. 쉽게.. 그러니까 칸트는 순수이성.. 실천이성.. 판단력 이성 비판..이라는 3비판서를 쓰면서 철학을 인식론, 윤리학, 미학으로 나눴죠.. 그렇죠? 그런데 그 인식론, 윤리학.. 그 윤리학이라는 그 앞에 있는 그 카테고리는 사실 이 에티카에서 나온겁니다.. 에티카에서.. 원래는 그 윤리학 대신에 뭘 넣어야 돼? 존재론을 넣어야 돼요.. 존재론을 넣어야 되는데.. 여기에서 나온거에요.. -존재론을 넣지 않고 에티카를 넣어버렸다? 에티카를 넣었는데.. 왜 그러면 존재론을 에티카로 바꿨느냐? 라는 이야기를 해야죠.. 해야 합니다.. 그러면 인식론은 뭐냐?라고 문제를 제기해야죠.. 그런데 고대로 돌아가면 전통방식의 철학은 두 가지 에요.. 테오리아와 프락시스.. 이 두개에요.. 두개.. 그러니까 두 개.. 그러니까 테오리아는 이론입니다.. 관조지요.. 그것을 우리는 형이상학이라고 부르고.. 이 형이상학이 인식론으로 바뀐겁니다.. 왜냐하면 형이상학이 중세에서는 누가 독점했으니까? 신학이 독점했기 때문에 근대 이후에 이것을 인식론이라는 말로 바꾼 거에요.. 형이상학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이런 말은 단지 앎이 아닙니다. 이 세계를 초월한 앎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이에요.. 뭐를 알 수 있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뭘 어떻게 알 수 있는가가 왜 중요해? 그러면 방법론이 되잖아요? 인식론은 초월을 알 수 있을까? 초월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그렇죠? 그다음에 프락시스.. 실천이죠.. 실천..  행위에요.. 행위.. 행위에 대한 이게 방법론이죠 사실은.. 이것을 우리는 존재론이라고 불러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삶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인거죠.. 삶은 무엇이냐?는 질문은 테오리아가 아닙니다.. 프락시스에요.. 테오리아는 삶은 무엇인가가 아닙니다.. 우주는 무엇인가? 이런 거에요.. 신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이에요.. -초월해 있는 것.. -그렇죠.. 그래서 그것을 형이상학이라고 해요.. 그런데 이 둘은 붙어 있었어요.. 그렇죠? 한쪽이 한쪽을 보는 빛과 그림자에요.. 붙어 있었단 말이죠? 고대에서는.. 그렇지? 그런데 이게 테오리아가 프락시스.. 압도하는 지경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었고.. -중세가 그걸 했지..밀어붙였지.. -그랬죠.. 근대로 들어오면서 테오리아의 목을 벴지만 그 위에.. 기술 결정론이라고 하는 생성의 논리라고 했죠? 생성의 논리.. 기술 결정론이라고 하는 그게 다시 머리로.. 치켜 올라가는 형국이기 때문에.. 바닥에 있는 프락시스에 대해서 동격의 위격으로 살리고 싶은 욕망이 바로 에티카라는 질문.. 그 책을 쓰게 된 이유입니다.. 그러니까 신의 머리를 죽여서.. 신학이 죽으면.. 잘라서.. 그러면 바닥은 변하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프락시스..존재론의 그 바닥이.. 그대로 하부에 있단 말이죠? 그래서 그걸 올려야 된단 말이에요.. 그걸 올릴려고 하면은.. 어떻게 올리면 되냐? 그러면 존재론이 제1층위에서 모든 것을 설명하면 되겠구나?라는 거죠.. -존재론을 올리기 위해서 에티카를 썼다? -네.. 존재론을.. 테오리아 위에 올리는 게 아니라.. 테오리아랑 원래 동급인 차원으로 하고싶어 했기 때문에.. 좌우, 앞뒤 이런거죠.. 그리스 시대에는 그게 당연했으니까 말이죠.. 당연한 거니까.. 그렇죠? 형이상학과 존재론은 같은 거에요.. 어떤 것을 먼저 질문하냐..의 차원인 것이죠.. 반드시 최종질문에는 다른 것을 또 물어야 돼.. 이쪽을 물어도.. 신을 물어도.. 존재를 물어야 되고.. 존재를 물어도 신을 물어야 된단 말이야.. 그런데 그게 일원론의 본질이에요.. 붙어 있었다는 거야 이게.. 그래서 스피노자의 일원론은 이게 붙어 있는거야.. 그리고 이게 중요해.. 진리는 하나라는 이게.. 왜 중요하냐면.. 일원론은 진리가 그냥 단지 하나라는 방법론을 초월합니다.. 왜냐하면 이게 되게 재밌는데.. 속된 일원론은.. 철학이 아니라 유일신을 믿는 종교적으로 돌아갈 수 있죠? 그렇죠? 속된 일원론은.. 이 말은 뭐냐 하면.. 일원론은 일원론이어야 한다는 주장이에요.. 일원론은.. 그러니까 스피노자가 에티카를 주장한.. 일원론을 주장한 건 일원론이어야 한다는 거야.. 그러면 왜 일원론이어야 하냐?라고 질문해야지요.. 다원론이 지배할 수 있으니까.. 일원론이어야 한다는거야.. 그렇죠? 시대적인 상황이 벌써 17세기에.. 다원론이 지배하는 세상을 봤다고.. 스피노자는.. -국가가 그냥.. 신이 돼서 모든 것을 지배해버리는..? -아, 그 분화되는 국가가.. -그렇죠.. 분화되는 국가..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다원론의 핵심에는 상대주의가 있는 거에요.. 자본주의가 상대주의로 가고.. 상대주의가 인간을 예속할 수 있는 그 구조를 본거지.. 그러니까 다원론의 대치하기 위해서 일원론을 주장한거란 말이야.. 데카르트 너도.. 이원론도 다원론으로 갈 수 있어.. 이런 주장의 속에서 에티카가 나온 거에요.. 진리가 여럿 있어야 된다는 게 다원론이죠.. 그렇죠? 진리가 여럿 있어야 되는.. 어떤 의견이 아닙니다.. 그냥.. 이것은.. 그런데 무슨 얘기냐면.. 그리스 시대에는 일원론가 다원론이 아까.. 프락시스와 테오리아처럼 붙어있는 것처럼 서로 대치돼서 병합돼있었어요.. 그리스 시대에는.. 병합돼있었어요.. 로마 시대에 가면.. 이게 병합되지는 않고 다원론이 우세합니다.. 이게 무슨얘기냐면.. 물질이 풍요로우면 풍요로울수록 다원론이 우세합니다.. 그래도 로마 시대 때는 그 다원론이.. 획기전인 차원의 위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의 신들은 장난이 아니잖아? 그래서 인간의 존재가 그렇게 허접한 수준으로 타락하지는 않았죠.. 그런데 그리스 시대는 이게 완전히 병치되어 있어요.. 이 말은 뭐냐? 변증법적으로 일원론과 다원론이 경쟁했다는 뜻입니다.. -어느 하나가 어느 하나를 씹어먹지는 않았다? -네 그 경쟁 속에서 뭐가 촉발하니까? 사유가 촉발하니까.. 그 경쟁 속에서.. 그렇기 때문에 스피노자는 다원론이 도래할 세계를 예견하고.. 일원론의 차원에서 에티카를 쓴거라고.. 여기를 읽어야 되는데.. 이게 참.. 허술해요.. 허술합니다.. 그래서 기초가 안됐다는 거에요.. 사유가 안된다는 거야.. 그러니까 다른 사람의 언어를 계속 인용하면서 빌려써.. 제대로 이해도 못하는데.. 언어는 몸이 느끼지 못하는데 그것을 인용한다? 그러면 자기도 모르는 거에요.. 그거.. 자기도 모르기 때문에 삶과 분리돼있는거지.. 앎이.. 이런 거에요.. 종교의 시대에는 일원론이 패권을 잡았는데 이것도 다시 읽어야 되긴 하지만.. 일원론이 패권을 잡았는데.. 왜냐하면 걔네들은 형이상학이 존재론과 다르지 않았으니까.. 다시 읽어야 되는데.. 자본주의 시대가 오면은 다원론이 패권을 잡습니다.. 맞는 거에요.. 물질의 풍요가 오면 다원론이 옵니다.. 물질의 풍요가 협소되면 일원론이 지배해.. 그렇기 때문에 중세 시대 때는 일원론이 지배한거에요.. 물질의 풍요가 오면.. 다원론이 지배하게 돼.. 100% 입니다.. 조금 있다가.. 부탄의 사례로 설명할건데.. 우리도 이렇게 얘기하지.. 우리는 옛날에 참.. 아.. 우리는 옛날에 행복했는데.. 이런 말 가끔 하잖아요? 그렇죠? 행복했는데..라는 말은.. 이 고민이 없었는데.. 라는 뜻이에요.. 모든 고민을.. 코나투스를 어디다 쓰니까..? 먹고 사는 데 쓰니까.. 힘이 없어.. 고민할.. 걱정할.. 그러니까 일원론의 시대에 살았다는 거죠.. 물질의 풍요가 없었기 때문에.. 일원론의 시대.. 그러니까 종교적인 신비.. 어떤 아버지의 말씀, 선생님의 말씀만 따르면 되는 일원론의 시대에 따랐기 때문인거죠.. 그런데 물질의 풍요가 열리면 다원론으로 들어오잖아? 다원론으로 들어왔을 때는 자기의 존재실력을 증명하지 못하면 이게 경쟁이라는 거야.. 다원론이 경쟁.. 이 경쟁에서 밀려나요.. 그러니까 근심과 걱정이 일어나죠.. 그래서 로마인들은 그렇게 경쟁을 한거야.. 서로의 존재 실력을.. 다원론의 시대니까.. 저런 정의로운 경쟁이 다원론이 열리면 그래도 다원론이 타락하지는 않거든요.. 하지만 사유는 낮아지지.. 사유는.. 이게 완전히 일원론이 완전하게 대치해야 되는데.. 그래서 그리스보다 로마가 사유의 측면에서는 안타까운 거에요.. 하지만 문화적 측면에서는 다원론이 훨씬 압도적이죠.. 문화라는 것은 그 물질이라고하는 질료를 돌려야 되니까.. -승부의 세계니까 또.. -그렇죠.. 그러니까 훨씬 아름답죠.. 다원론의 세계가.. 이게 뭐 이런 거에요.. 이게 인류사 입니다.. 이걸 공부.. 암튼 그래요.. 이 긴장과 대치가 소거됐기 때문에.. 사유가 나오지 않죠.. 진리가 두 가지 입장이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이것은 뭐냐 하면은.. 빛은 그림자가 반드시 출현하는데.. 그렇죠? 빛과 그림자는 같이 있는거잖아요? 빛이 있고 그림자가 있는데 하나가 본보기로 고를 수 있다? 뭐 이런 뜻입니다.. 생이 있고 사가 있는데 생 사 중에 하나를 본보기로 고를 수 있다?는 뜻이에요.. 불가능하죠. 불가능합니다.. 동시에 이해해야 되는 거에요.. 그러니까 일원론과 다원론은 긴장 관계에서 동시에 이해할 수 있을 때 우리가 사유라는 것이 촉발되는거죠.. 그러니까 스피노자는 정치적 맥락으로 일원론을 주장한겁니다.. -염두에 두고.. 다원론이 될 세상을 염두에 두고.. -그렇죠.. 염두에 두고.. 그러니까 다원론과 일원론 중에 다원론적 입장이 있고 일원론적 입장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필요한 일원론적인 일원론이 있고, 그 상황에서 필요한 다원론이 있는데.. 왜냐하면 철학은 현실에 개입해야 되니까.. 스피노자는 사실은 이원론인데.. 사실은 저세계론자에요.. 그래서 헤겔은 철학강요에서 스피노자를 뭐라고 정의했냐면.. 무세계론자고 그래.. 무세계론자.. 이 세계가 없다.. 얘는.. 무신론자가 아니라.. 범신론자.. 무신론자가 아니라.. 얘한테 중요한 리얼.. 진짜는.. 세계에 없다.. 그래서 무세계론자라고 그래.. 그런데 -저기에 완벽하게 있는 것을 걔는 믿고 있는 사람이다? -어.. 헤겔이.. 철학강요에서.. 그래서 무세계론자라고 해.. 무세계론자이기 때문에 저세계야.. 그러니까 플라톤주의자라는 뜻이죠.. 진짜가 여기 없어.. 무세계론자야.. 그런데 사람들은 그 무세계론자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라는 말도 덧대요.. 무신론자는 쉽게 이해하는데 무세계론자는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왜? 우리가 신체라는 세계가 여기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무세계론자가 가능하다고 못느껴.. 여기가 리얼이 아니다 라는 사람이 있다라는 것을 이해를 못해.. 그러니까 몸으로 감금되어 있으면 절대 사유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몸은 사유하지 않아요.. 사유를 지켜주지요.. 혹은 사유를 방해하거나.. 그래서 몸은 사유하지 않습니다.. 뇌가 사유한다? 지랄하고 있네.. 뇌는 사유하지 않아요.. 우리는 코드로 사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어를.. 뇌는 언어가 아닙니다.. 뇌라는 언어는 어떤 작용도 안해.. 사유는 그런 작용이 아니야.. 그리고.. -뇌는 전달만 할 뿐이야.. -그렇죠.. 기계적이지.. -그러니까 AI한테 철학책을 읽혀봐.. 얘가 오류, 버그.. 막 박박 날거에요.. 왜냐하면 철학자들마다 다루는 개념이.. 통일되어 있지 않거든.. 백과사전을 만들고.. 철학사전을 만들어도 다 달라.. 그게 중요한거죠.. 자, 아무튼 진리가 두 가지 입장.. 일원론과 다원론이 있고.. 그 중에 하나 선택하라.. 뭐 이런 식이에요.. 똥팔씨 주변을 한 번 보세요.. 그런데 그럴려면 일원론자가 있어야 될 것 아냐? 어딘가는? 주변을 한번 보세요.. 일원론자가 있는지? -없지.. 종교인들 조차도 다원론을 주장해.. 무슨 얘기냐? 신부님조차도 스님이 맞대.. 스님조차도 신부님이 맞다고 그러고.. 목사님은 말할 필요도 없어.. 이거에요.. 진정한 일원론자가 없는데.. 어떻게 일원론과 다원론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이며.. 다원론이 지배하는 세상에 일원론의 힘이 입지를 키우지 않고 어떻게 철학을 할 수가 있냐? 질문해봐야 되는 것이죠..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시대가 반지성 시대라는 거에요.. 필연적인거야.. 이거.. 하나가 독점하기 때문에.. 일원론이 독점해도 반지성주의 입니다.. 중세에 많이 생각하는 사람 별로 없었어.. 우리 어렸을 때 많이 안생각했습니다.. -따르기만 하면 되니까.. 생각할 이유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생각이 갖고 있는 그 도전적인.. 고통.. 그다음에 쾌락.. 이거 몰라.. 이걸 하나 읽어냈을 때.. 이걸 알아냈을 때 갖고 있는 막. 빛.. 있죠? 이런 걸 모른다는거야.. 여기 서재에서 막 공부하다가 알고 난 다음에 저 문을 열고 나갔을 때 그 아름다움.. 이런 거 모른다는 거지.. 그러니까 덧대서 말하면 이 시대가 가장 위기인 조건은.. 위기의 조건은.. 언어를 잃어버린 이 시대.. 이거에요.. 다원론이 독점하고 있는데.. 일원론적 차원에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없다는 것.. 그러니까 일원론적인 차원에서 삶을 사는 사람은 사실 중세적이라고 그랬어요.. 그래서 스피노자는 상당히 중세로 돌아가자는 운동이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어요.. 그 중세적인 결.. 수도사처럼 사는 그 결이.. 팡세도 똑같고.. 은둔자.. 이렇게 진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없다는 거죠.. -전근대적인 복원? -그렇죠.. 전근대적인 복원입니다.. 그 복원을 그냥 몸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언어로 비벼서 한다는 게.. 이제 스피노자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인건데요.. -헤겔이 그 지점을 비판한거고? -네.. 왜 전근대로 돌아가냐? 새근대를 만들어야지 임마! 이런 뜻이죠.. 왜 전근대로 하냐? 새근대로 만들어야지.. 이런 뜻이에요.. 사실은.. 헤겔은.. 그것을 조금 읽으면 좋은데.. 오늘 스피노자 방송이니까.. 모든 철학자는 완전합니다.. 그 시대에.. 완전해요.. 헤겔의 시대에 스피노자가 살았으면 헤겔의 책을 썼을지도 모릅니다.. 스피노자는..

자, 스피노자는 요컨대 이런 시대를 예견한거죠.. 자본주의, 다원주의, 상대주의.. 이겁니다.. 자본의 포텐치아.. 포텐티아.. 권력을 독점하는 시대.. 뜻이.. 독점될 권력이 재생산을 위해서 국가를 이용하는 시대.. 맞죠? 이 시대잖아요? -유대인인데? 그래서 잘 봤나? -잘 봤죠.. 우리는 이걸 지금 알아.. 지금도 몰라 잘.. 그러니까 자본이 국가를 산다는 생각을 아직도 못해.. 아직도 국가가 자본의 밑(?위?)에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미국을 잘 못읽는 거에요.. 민주당이 공화당보다 주류에요.. 제발 좀.. 민주당이 약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우리나라랑 똑같이 보지 마.. 주류에요.. 그들이 자본을 쥐고 있어요.. 그래서 권력을 사는 겁니다.. 그런데 안파는 놈들이 간혹 있어.. 그게 또라이지.. -민족주의자들? -트럼프.. 이런 애들.. 국가주의죠.. 미국은 민족주의가 없으니까.. 그래서 트럼프는 자국우선주의.. 국가주의를 내세워요.. 사실은 국가주의로 포장된 자기 이득주의지.. -맞지.. -자기이득주의야.. 그러니까 짐승과 짐승이 싸우는건데.. 진정한 국가주의자가 아니죠.. 트럼프는.. 그러니까 이게 망가진 사회 아닙니까? 진정한 일원론자도 없고 진정한 국가주의자도 없는.. 이게 망가진 거 아니야? 그러면 누가 이겨? 힘이 이깁니다.. 자본이.. 반드시.. 그래서 트럼프는 뭘 할 수가 없었어.. 그래서 갔잖아.. 한방에.. 코로나라는 빡.. 맞고.. -아 그런데 트럼프도 어쨌든 자기 이득을 위한.. 자본주의.. 자본가는 아니지만.. -자본가죠.. 걔도 몇 수십조가 있는 자본가니까.. 자기 이득을 위해서 움직이는거죠? -걔도 그래도 어쨌든 자본가네? -자본가죠.. 자본가인데.. 주류가 아니지.. 비주류지.. 그런데 비주류자본가가 주류 자본가를 이기려면 뭔가를 이용해야 되잖아? 그래서 국가주의를 이용하는거죠.. 사기꾼이야.. 사기꾼.. 그런데 저 사기꾼이나 이 사기꾼이나.. 똑같은 사기꾼이라는거죠.. 그게 대치해서.. 서로 죽이고.. 의회에서 막.. 머리를 날려버리는.. 총을 경찰이 쏜다는 게 이게.. 야.. 이게 이게.. 우리나라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이게 짐승같은 사회에요.. 다원 시대에 상대주의로 가면 그 짐승같은 사회가 우리 미래입니다.. 한국 사람은 안 쏠 것 같애? 쏩니다.. 그러니까.. 사유가.. 완전히 종말하게 된 게 가장 위험하죠? 스피노자는 윤리학과 형이상학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다르지 않다.. 같은 거에요.. 일원론.. 이게 일원론의 본질입니다.. 이게 같아야 돼요.. 그래야 다가오는 다원론에 대치해서 사유의 작용을 이어갈 수 있다고.. 그렇죠? 다시 말하면 존재론과 인식론은 하나라는 주장입니다.. -에티카가? -네.. 그러니까 이거는 그 아우구스티누스랑 똑같은거야.. 존재론이랑 인식론은 하나다.. 이거.. 이게.. 이 말이 기독교에서 뭘로 차용해? 성삼위일체.. 이게 똑같은 말이야 이게.. 인식론과 존재론은 하나다.. 이 말이 성삼위일체랑 똑같은 말이라고.. 이게.. 그래서 나는 무신론자가 아니라고 변명하잖아.. 나는 신을 믿는다.. 신을 믿을 수밖에 없죠.. 인식론과 존재론이 하나니까.. 얘한테는.. 신을 믿을 수밖에 없는거죠.. 이 말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삶과 앎은 같아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아는대로 살아야 되고.. 사는대로 알아야 된다는 뜻이에요.. 어려운 게 아니에요.. 이게.. -내가 양태를.. 표현된 양태를 알면 알수록 신에게 다가갈 수밖에 없고, 신을 알 수밖에 없다? -실체를? 알 수밖에 없다.. -실체를 알 수밖에 없는거다..? -그러니까 질문을 이렇게 하면 되죠.. 그러면 제대로 살려면 제대로 알아야 되는가? 이렇게 바꿀 수 있죠? 똥팔씨 어떻게 생각해요? 제대로 살려면 제대로 알아야 되는가? -맞지.. -그러면 공부 안하면 잘못 사는 겁니까? -맞지.. -아 그래? -위험한 발언입니다.. -공부 안하면 제대로 못살지..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죠? 근거가..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다.. 라는 게 스피노자의 주장입니다.. 이유가 있다 다.. 이유가 없는 것은 없다.. 우발적인 것도 이유가 있다.. 우발이라는 이유.. 없는 게 없다.. 신에 의해 설계된 것이기 때문에.. -모든 것은 필연적이다? -네. 필연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너만 이렇게 불행하냐? 생각하지 마라.. 이게 제가 박신양의 말이 계속 머리에 맴도는데.. 힘들 때마다.. 박신양이 그 러시아 시인.. 교수한테 들었던 말.. 왜 당신만 삶이 힘들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하느냐? 야 이게.. 아주.. 엄청난 큰 힘이 되기도 하고.. 압박이 셉니다. 이게 푸념도 못하게 해버리니까.. 이게.. 언어가 무서운거야.. 그래서.. 예를 들면 앎과 삶의 일치라는 것은 에티카 4부 머리말.. 이게 4부가 되게 핵심인데.. 이 책엔.. 1부와 4부가 핵심이에요.. 그런데 에티카 4부 머리말에.. 이런 유명한 말이 있죠? 정서.. 감정의 통제와 억제에 대한 인간의 무능력을 나는 예속이라고 한다.. 이거죠 이거.. 그래서 알아야 된다는 거야.. 무능하거든.. 우리가 그것을 모르면.. 통제할 수도 없고.. 감정이 구조화 되어 있는데.. 그 구조를 모르면 -충동에 따라 그냥 끌려갈 뿐이지.. -우리가 무능력해.. 그러니까 중요한 거야.. 존재가 무능력하다는 것은 존재가 움츠러들었다는 뜻이죠? 코나투스가 제대로 애씀을 제대로 애쓰지 못한다는 뜻이에요.. 이것은 제대로 있는거야? 없는거야? 제대로 없는 거죠.. 제대로 있지 않은 거지.. 없다는 말은 틀렸지.. 제대로 있지 않은 거지.. 제대로 있지 않은 것은 좋은 삶이 아니죠.. 그렇죠? 그래서 예속은 자유의 반대말이잖아요? 자유라는 것은 자기 범주를 추월하는 거죠.. 1인칭을 추월해서 2인칭으로 가고, 2인칭을 추월해서 3인칭으로 가는 게 자유죠.. 그러니까 제대로 알지 못하면 심지어 노예라는 표현도 쓰죠.. 에티카에.. 이 노예가 앎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이것을 벗어나려고 해도 별무소용이야.. 안된다는 거에요.. 왜냐하면 지성이야말로.. 지성이 다른 말로 무슨 말? -지성? -네.. 지성.. -분별력? -그렇죠.. 분별력을 키워야 하는거야.. 이게 감정의 문제인지, 이게 아니면 국가적 차원인지.. 뭐 이런 식으로.. 그래서 그 원리, 이성의 원리까지.. 분별력이 이성의 원리까지 닿지 않으면 자기 보존의 힘이라는 이 애씀.. 이 코나투스는 관성으로 작동됩니다.. 그 관성으로 그냥 돌아가.. 거기서 살아.. 그래서 중력장이라는 개념이 있는거야.. 감정 계단에.. 그 관성대로 살아.. 그게 자기보존을 하는데 유리하기 때문에 그래요.. -그게 편하니까.. 편하기 때문이지.. -그렇죠.. 그러니까 코나투스는 유한한 존재가 본질적으로 장착한 힘입니다. 선험적으로 장착한 힘인데.. 이게 자기보존 욕망이에요.. 자기보존의 힘.. 이거죠.. 이게 충동이 되기도 하고, 사랑이 되기도 한다니까? 이게.. 어떻게 변신할지 모르는거죠.. 코나투스.. 애씀이 있는데.. 우리가 애씀을(?) 떠나서 어떻게 변신할지를 모르는거야.. 그런데 관성대로 살면 그냥 본능대로 사는거죠.. 주어진대로.. 이것은 알 필요가 없죠.. 따라서 알 필요가 없는대로 사는 것은 우리가 노예로 사는 거에요.. 때문에 이론의 실천성.. 이거 누가 말한? 프랑스 철학자.. 힌트..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철학자.. 이론의 실천성.. 누구? 알튀셰르.. 이것은 스피노자의 개념에서 그대로 차용한거죠.. 이론의 실천성이 뭐냐하면 알아야 바뀐다는 뜻이에요.. 알지 못하면? 안바뀐다.. 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스피노자가 이렇게 얘기했더라고.. 3부에서는.. 충동하고 욕망하고는 같은 것이다.. 다만 차이가 -같을 수 있다.. -어, 차이가 있다면은 충동은 모르는 것이고.. -그렇지.. 언어.. -욕망은 아는 것이다.. -응.. 언어죠.. -인식이 받쳐진거다.. -충동이 코나투스의 1차원이에요.. 가장 낮은 코나투스죠.. 적이 공격해오면 방어해오고, 도망갈려고 하는.. 이게 충동이죠.. 그렇죠? 정글이나 아니면 사바나나.. 이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의 세계에서.. -그렇지.. 동물의 세계에서.. 우리 직장의 세계도 똑같죠? 충동의 세계죠.. 거기서는.. 누가 공격하면 방어하거나 싸우거나.. 이런 거에요.. 그렇죠? 여기에 국가는 없죠.. 사회는 없어요.. 이건.. 사회가 아니에요.. 그냥.. 충동의 세계는 사회가 아무리 국가라고 이름 지어줘도 그건 사회가 아닙니다.. 사회는 그 충동의 세계에서 보호해줘야지 사회지.. 씨.. 그러면서 알게 해야지.. 그렇죠? 그러니까.. 이 코나투스가 제대로 욕망의 차원으로 제대로 활용될 수 있으려면.. 앎의 능력을 키우는 수밖에 답이 없다.. 스피노자 4부 부록.. 이거 읽어보세요.. 4부는 얘가 부록에 써놔요.. 4부를 설명하면서 이걸 내가 체계적으로 안설명해서 부록에서 조금 체계적으로 잡았다.. 그래서 설명을 해놓습니다.. -그러니까 부록이 더 재밌더라고.. 1부도.. -부록도 주석만 읽으면 돼요.. 사실.. -1부도 부록이 더 재밌고.. -부록과 주석.. 이게 핵심인데.. 부록과 주석.. 여기서 자기 의견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부록과 주석을 읽으면서 조금 스피노자를 느낄 수 있습니다.. 4부 부록의 마지망 항 32항의 맺음말에 스피노자는 이렇게 써놓습니다.. 우리들이 인식하는 한에서 우리들은 오직 필연적인 것만을 욕구하며 또한 일반적인 참다운 것에만 만족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인식하는 한에서 필연적인 것만을 욕구한다니까.. 그러니까 욕망을 욕구하기 때문에 필연적인 것에 쓸 수 있어.. 그렇죠? 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해야만 하는 것에.. 그렇지? 그러고 참다운 것에.. 제대로 된 것에 만족할 수 있다는 거지.. 이걸 나중에 설명할건데.. 이걸 스피노자는 최고의 욕망이라고 표현합니다.. 나는 중력이 3인칭.. 3중력 시대.. 그러니까 분노와 사랑..이라는.. 그 시대.. 라고 정의한거고.. 에티카 5부 정리 6번에 이런 말도 있어요.. 정신은 모든 것을 필연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한에서 정서에 대하여 더 힘을 가지거나 정서의 작용을 덜 받는다.. 이게 감정의 작용을 덜 받는다는 거야.. 정신은 모든 것이 필연적으로 있다..라고 하는 인식 한에서.. 그러니까 필연적으로 있는 그 분별력을 키우는 한에서.. 세계의 기하학을.. 존재의 기하학을 아는 한에서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다? 정서의 작용을 덜 받는다.. 예를들면 감정 계단의 주장처럼.. 내가 슬퍼.. 그러면 나는 즐거움의 차원에 있는거죠.. 누구를 만나도 되게 기뻐.. 그러면 당연히 그 사람한테 화를 낼 수도 있어요.. 그렇죠? 기쁘기 위해서 그 화를 뭐해야돼? 그러면? 풀어야지.. 화해해야죠.. 그렇지? 누군가 너무 싫어.. 그냥 짜증나는거 말고.. 짜증이 슬픔의 차원이라고도 설명했어요.. 하여튼 엄청 싫어.. 분노차원에서.. 그러면 그와 사랑을 할 수.. 사랑도 할 수 있다라는 것을 알아야죠..  아는거죠.. 그런데 거기까지 우리는 잘 못느낍니다.. 악몽처럼 막 나올만큼의 사랑을 한 기억이 별로 없어요.. 중세의 기사들은 목숨을 걸잖아요.. 사랑을 위해서.. 그래서 그 에너지를 분노로 막 쓰잖아? 그 정도까지 사랑한 기억이 많이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연애도 다원론으로 하니까.. 많이 만나봐야지 장땡이래잖아? 많이 만나보는데 어떻게 깊이 만나봅니까? 사람을? 그렇죠? 많이 만나보는데 어떻게 깊이 만나봐? 유한한데.. 그렇죠? 불가능하잖아요? 그렇지? 깊이 만나 볼 기회가 별로 없어요.. 아쉽게도..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배우는.. 사랑이란 관계를 배우는 생성의 코나투스 능력을 우리가 가늠하거나 분별하거나 체험할 시간이 별로 없죠.. 좋은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뭐냐하면 코나투스를 신체의 예속으로부터 구제할 수 있어야 좋은 국가죠.. 사람들이 충동적 차원에서 경쟁하고 죽이고 막 이러면 나쁜.. 이건 국가가 아니야.. -정글이죠.. -정글이야.. 그러니까 미생같은 드라마 막 유행하잖아요? 그게 왜 유행해? 그게 우리 사회의 현실을 모방하기 때문에 유행하는거야.. 한국 사람은 아주 희한해요.. 사유를 안하는 사람은 아주 편하다고.. 생각, 추상적 차원을 톺아보지 않은 사람은 어디에 공감해? -드라마.. -모방에 공감한다고.. 재연해요.. 재연.. 모든 미학이 재연해.. 그래서 헤겔 미학이야.. 이 재연의 차원에서 머무는 미학은 아주 낮은 단계에요.. -우리나라 영화.. 드라마들이 아주 재연이 죽이지.. -재연이에요.. 재연.. 현실의 재연이죠.. 검사도 막 재연하고 하시잖아..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 로마 예술은 재연이 아니야.. 이 진중권 미친놈아.. 그건 재연의 차원이 아니야.. 르네상스도 이건 재연이 아니라고.. 재연의 방식이 아니야.. 얘네는.. 기본적으로.. 물론 헤겔은 재연의 방식이라고 주장했는데.. 그 독일놈이 뭘 알겠어? 체험해본 적도 없는데.. 촌놈이.. 본적이 없어.. 얘는.. 재연이 아니야.. 걔네들은.. 재연이 아니야.. 구연이야.. 구연.. 신을 실제로 구연한거야.. 현실에 무한이 있다고 구연한 것. 구연이 어떻게 재연이야? -구연하기 위해서 본거지. -그렇지.. -실재를.. 실질을 한번 보고.. 저럴거야..라고 구연해 낸거죠.. -그렇죠.. 그러니까 얼마나 찾았겠어.. 그걸 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비용일 지불하고.. 빵집 누나 계속 얘기하지만.. 라파엘로의 아름다운 빵집 누나.. 그런 거에요.. 국가 차원도 마찬가지라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부탄이라는 국가를 예를 들어서 설명할게요.. 부탄.. 들어 봤어요? 부탄? -많이 들어봤지.. 행복지수 1위 하면 부탄 많이 나오잖아? -맞아요.. 60만명 사는데요.. GDP가 3천불인데.. 한 20~30년 전에는 300불이었다는 것 같애.. 거의 사람이 살 수 없는 GDP가.. 공장이 없다는.. 그런 국가였대요.. 그런데 그 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국민 총 행복지수.. 이거 맨날 조사한대.. 국가에서.. 부탄이라는 국가에서 조사한대.. 얘네들은.. 자기의 왕이 이거.. 입헌군주제에요.. 입헌군주제인데.. 왕이 자기가.. 절대군주제였는데 자기가  입헌 군주제로 자기가 바꿨어.. 그런 국가인데.. -옛날에 한번 이거 기사.. 우리가 시대공명에서 한번 했는데.. -했었죠.. 부탄.. 그거 영화도 있잖아.. 부탄.. 뭐.. 외국 노동자 나오는.. 똥팔씨하고 비슷한 애가 주인공인데.. 생김새가.. 아무튼 이제.. 재밌는 것은 그 후속타에요.. 경제가 부흥할수록.. 지금 부흥하고 대학도 세우고 한대요.. 부흥할수록 국민 총 행복지수가 떨어지고 있대요.. 최근에는.. 많이.. 그래서 60위권 밖으로 막 나가고 그런다는데? 왕이 솔선수범해서 막 재산도 뿌리고 걸어가기도 하고.. 이렇게 하는데도 성장.. 경제가 성장하는 순간 뭐가 발생해? 빈부격차가 발생해.. 그러니까 성장을 많이 했다는 것은 빈부격차가 많이 발생한다는 거지.. 그런 순간 빈부격차를 위해서 얘네들이 행복하다는 답을 제대로 안하는 거지.. 왜냐하면 부조리 하잖아.. 다른말로하면 경제가 성장하기 전에는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은 사람들이.. 경제가 불로소득을 부를 챙기는 사람들을.. 딱 꼬라지를 보니까.. 감정에 예속돼버리는 거죠.. 그러니까 일원론적 입장은 감정에 예속되지 않을 수 있거든요? 일원론은.. 모든 일원론은.. 신이 계시하는 거니까.. 그런데 존재의 이정표도 뚜렷해요.. 일원론은.. 한가지니까.. 한길이니까.. -내가 저리로 가면 행복하다는 것도 분명하죠.. -분명하죠.. 그러니까 얘네들은.. -저리로 가면 그냥 행복한거야.. -그렇지.. 그러니까 애네는 중세사회이기 때문에 행복했던 거에요.. 그리고 이 중세 사회에는 토지개혁을 왕이 했는데 토지를 분배시켰거든.. 그러니까 자기 땅을 개설하면 자기가 열심히 애쓰잖아요? 애쓰면.. 코나투스 하잖아? 그러면 자기 가족이 먹고 살 수 있었거든.. 그러니까 불만이 없었던거야.. 그런데 저기 가면.. 그런데 애써야지.. 일을 해야 돼.. 그런데 도시가 발달하고 공장이 세워지고 그러니까 불로소득.. 임대료 받고 먹(고노)는 놈들이 저기 생기는거야.. 나는 애쓰는데.. 그래서 막 주름살이 막 파이고.. 노인이 되고 그러는데.. 저기는 빤빤해 그냥.. 빤빤해.. 그러니까 어때? 화가 나는거죠.. 그 불쾌의 감정이 들어오는거야.. 신기하죠? 그러니까 국민 총행복지수가 떨어지는 거야.. 왜 그런가? 이거 에티카에 써있어.. 이것도.. 에티카 4부 부록 제 15항.. 스피노자는 이렇게 말해요.. 정의, 평등, 단정함에 속하는 것들이 화합을 가져온다.. 일원론이에요.. 이게 원래 정의롭고.. 분배가 이루어졌잖아? 평등하고.. 다 가난하니까.. 그다음에 단정했었다고.. 심플했단 말이야.. 삶이.. 그렇기 때문에 화합했다고.. 서로 싸우지 않았어. 서로 다투지 않았어.. 그런데 여기서 부정의.. 그다음에 불평등.. 복잡함이 들어오면서 화합이 깨지는거지.. 이런 사회 하면 화합을 할려면 이런 사회가 뭉쳐있으려면.. 이런 사회가 뭉쳐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돼? 그러니까 복잡한 사회로 갔다고 그랬어요? 평등하지 않고.. 단정하지 않아요.. 그다음에 정의롭지 않아.. 자본주의는 경쟁시스템이 당연한거지.. 힘을 이기는거지.. 무슨 정의를 바래? 불가능합니다.. 이런 사회는 어떻게 그러면 그들은 뭉쳐있는가?라고 했을 때.. 공포가 그들을 뭉친다.. 맨날 그 얘기에요.. 공포가.. -그렇지.. 외부의 위협.. 외부에서 올 수 있는 위협.. -외부만이 아니죠.. 내부에서도 오죠.. 우리는 그것을 공권력이라고 하죠.. 공권력의 위협.. 이거죠.. 그러니까 부탄은 단정한 사회에서 복잡한 사회로 바뀌어갔기 때문에 국가가 단일한 정체성 국가정체성을 유지하려면 공포로 다스릴 수밖에 없어요.. 나중에는 이제.. 한계선이 나오면 바로 공포로 갑니다.. 관료가 늘어나고 공권력의 힘이 세지죠.. 예전에는 경찰이.. 우리 시골에 가면 경찰아저씨.. 다방에 가면 항상 있었어.. 놀면서.. 그렇죠? 무단횡단하면 아이..내일 해.. 오늘 한번 봐줄테니까.. 뭐 이렇게 했었다고.. 단정한 사회는 그래요.. 지금은.. 올라가면 난리나.. 나 예전에 차를 사러 갔었는데.. 유턴을 잘못해가지고 무단 유턴을 했어요.. 빠라바랑 하면서 서라고 하더라고..나보고.. 그런데 그때는 공무원이었잖아.. 내가 니체처럼에도 썼는데.. 공무원이니까.. 신분증 달래.. 그래가지고 딱 공무원증 줬거든? 공무원증 밖에 없었어 그때.. 왜냐하면 나는 지갑을 안갖고 다니니까.. 차 막 뒤지니까 공무원증 나오더라니까.. 아이.. 선생님 조심히 다녀요.. 그리고 그냥 풀어줬거든? 공권력이라는 게 이런거야.. 이새끼는 그러니까 자기가 그렇게 해줘야 나중에 자기 자식이 뭔가 이렇게 상담이나 뭔가 할때 이득을 보지 않을까?하는 상상을 하는거지.. 안타깝께도.. 이게 공포에 기대서 더 정체성을 물리는거죠.. 그러니까 코나투스를 어떻게 해? 이 공포를 이기는 능력으로 유도하는거야.. 복잡한 사회는.. 그렇지.. 각자도생인거죠.. 그래서.. 되게 이기적일 수밖에 없지.. 맞죠? 왜? 코나투스는 본질적인 거에요.. 나는 나를 보존해야 되니까.. 다른 사람을 이겨야 내가 보존돼.. 단정하지 못한 복잡계의 사회에서는.. 그러면 타인을 이겨야지만 공생하니까 당연히 공격력을 키울 수밖에 없죠.. 모서리를 계속 날카롭게 할 수밖에 없는거야.. 신뢰가 무너지고 반지빠른 능력이 최고의 신뢰가 되는거지.. 코나투스가 반지빠른 인간을 만드는거에요.. 복잡한.. 다원론의 세계는 이게 수순입니다.. 이게 구조적인거야.. 다원론의 세계로 가면 이렇게 돼.. 그래서 로마도 그렇게 싸웠어.. 100%야 이거.. -그런데 로마는 씨발.. 문화가 발달하는데.. 우리는 문화가? -안발달하지. 걔네는 경쟁을 통해서 문화를 발달시켰는데.. -우리는 경쟁이 있잖아? -있지.. -쓸데없는.. 구조를 위한 경쟁인가? -그건 스케일의 문제에요.. 우리는 항상 얘기하지만 내부용이야.. 한국은.. 스케일이 문제라고.. 로마는 세계야.. 거기가.. 실제로.. 그런데 한국은 한반도.. 섬이야.. 내부용이라고.. 내부용.. 되게 신기한거야.. 외국어를 할 때.. 내부용으로 한다고.. 여기에서 존재력을 내부경쟁력으로 쓴다고.. 밖에서 써야되는데.. 그러니까 경쟁이.. 스케일이 문제라고.. 그래서 문화가 안만들어지는거죠.. 스케일이 세계이면 사람들이 이 스케일로 오게해야 되니까 이 서울을 아름답게 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죠? 그런데 내부용이니까.. 자기네들끼리 머무르니까.. 그렇지 않은거죠.. 이게 스케일의 문제야 이게.. 너무 작아.. 한국 사람들은.. 코나투스가.. 이제 시작이니까.. 그렇다고 믿어봅시다.. 그런데 이 약삭바른 인간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는 게 이 또한 감정의 노예입니다.. 정서의 노에에요.. 몸이 시키는대로 가는거죠.. 노예야.. 그냥.. 예속돼있는 거니까.. 다시.. 에티카 4부 머리말로 돌아가서 설명해봅니다.. 정서의 통제와 억제에 대한 인간의 무능력을 나는 예속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 반지빠른 인간도 무능력한 인간이에요.. 능력있는 인간이 아닙니다.. 그 다음.. 그것을 설명하는 말.. 정성에 복종하는 인간은 자신의 권리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운명의 권리 아래에 있으며.. 흔히 스스로 더 좋은 것을 보긴 하지만 더 나쁜 것을 따르도록 강제하는 것처럼 운명의 힘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뜻이에요.. 운명이 바로 체제입니다.. 체제.. 우리를 통제하는 시스템.. 체제는 몸을 길들입니다.. 몸은 맹목적으로 체제라는 운명에 봉사하죠.. 쉬운걸 하니까.. 시키는 대로.. 그것을 우리는 국가.. 교육이라고.. 그래서 알튀셰르가 세개를 얘기하는거야.. 뭐? 가정, 국가, 또 하나 뭐? 학교.. 이 세개가 우리를 길들인다는거죠.. 운명이라는거야 얘가.. 그래서 그들의 코나투스를 그 룰대로 살게.. 그렇죠? 체제의 이득대로 살게.. 이런 뜻입니다.. 체제의 보존대로.. 체제도 코나투스에요.. 체제도 하나의 몸이니까.. 그러면 체제가 몸이면 내가 거기 구속돼서 나는 노예지.. 체제가 주인이고.. 체체가 주인인 사회에 우리는 살고있는거죠.. 자본주의는 체제가 주인인 사회에요.. 체제가.. 인간이 주인이 아닙니다.. 그래서 로마랑 조금 다른 면이 있지.. 그러니까 몸이 주는 일차적 기쁨과 슬픔.. 뭐 표상.. 이런 것들이.. 정서, 감정이죠.. 따라서 감정대로 사는 삶은 체제가 표상한.. 체제가 이미지화된 몸에 예속돼 사는 삶이에요.. 그렇죠? 제 표현대로 하면 감정은 구조화돼있는데.. 이 구조를 알지 않으면 삶과 앎이 일치될 수 없고, 인간은 예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겁니다.. 그 구조를 철저하게 알아야 된다는 거죠.. 이를 통해서 자유를 우리가 한번 체험해보는거지.. 자유를 완전하게 일치시키는 경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신을 믿지 않는 이상.. 거의 불가능해.. 우리는 체험해볼 수 있어요.. 여러 번 빈도수를 많이 체험해보면 신이 죽은 이 세계에도 우리는 영광을 볼 수 있다.. 이게 니체에요.. 이게 니체라고.. 그러니까 요약하면 이거죠.. 자유는 감정으로부터의 해방인거지.. 뭘 통해서? 감정을 앎을 통해서.. 감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그 해방을 입증해내는 것.. 이게 자유죠.. 자, 어떻게 가능할까? 어떻게 가능? 이성의 지도를.. 그려야된다고 스피노자가 주장합니다.. 이성의 지도.. -그게 지난 번에 내가 엔딩멘트에다가 자유는 정신의 산물이라고 쓴 것.. 그런 것을 읽고 쓴 부분..? -그렇죠.. 이성의 지도를 그려야 한다.. 그래서 감정 계단이라는 책은 그 이성의 지도인 것이죠.. 조금 쉬었다가 그 이성의 지도를 그리는 방법을 시대공명과 함께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자, 시대공명부터 이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감정이어서 감정에 대한 어떤 기사를 가지고왔습니다. 경기일보에서 나온 기사구요.. 한의사.. 선생님께서.. 쓰신.. 감정에 대한 기사입니다.. -그렇죠.. 아 나도 침을 좀 배웠으면 하는데.. 가르쳐주는 데가 없어가지고.. 지금 불법화시켜가지고.. 배울 데가 거의 없어요.. 책으로 배우면 되는데.. 실험.. 임상이.. 똥팔씨 등판에다가.. 임상이 필요하다고.. -싫어.. -신동문처럼.. 좀 배우면 좋겠다.. 이게.. 다른 사람을 아끼는 데 되게 중요한 덕목.. -그런데 침술원은 있잖아요? 침술원.. -그러니까 지금은 불법인데 그전까지 했던 것들은 그냥 존속하게 놔둔거죠.. -예전에 이제 그.. 눈 안보이시는 분들.. -네.. 맹인들이 했었죠.. 그런데 이제 그 전의 것은 인정해주고. 앞으로 계속 나오는 게 안되기 때문에 배울 수가 없는거라.. 일단 배우는 것 자체가 이제.. 합법이 아니니까.. 슬프죠.. 한의학이 대체의학인데.. 대체의학이 라이센스를 주장해서 밀어버리는 것은.. 아.. 이거 야만입니다.. 야만이에요.. 안타깝죠.. 그렇지? 분명히 과학으로 입증할 수 없는 그 여백이 있어요.. 그 여백이 갖고 있는 그 치료술은 과학이 아직 밝혀내지 못한거에요.. 그 빈틈이 있거든요.. 그 빈틈에서는 오히려 신앙에 기대는.. 그 신적인 무한의 힘이 필요한 그 여백이 있어요.. 형이상학적인 영토.. 그게 이제 한의학이 보충해주는 영토에요.. 그래서 눈이 안보이는 맹인들이 눈이 안보이기 때문에 비과학적인.. 오성에 길들여지지 않은 맹인들이 그 영토를 건드릴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되게 중요한 의사인거죠.. 몸은 형이상학.. 존재와 형이상학적인 존재와 간섭되지 않으면 몸은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렇죠? 이게 혈이라는 게 형이상학적인 개념이잖아? 그게 어디 있는데? 그거 안보여.. 그거.. 그래서 나.. 자주가는 한의원의 한의사.. 자기의 손끝을 보고 이게 MRI라고 그랬어요.. 그걸 보면.. 여기죠? 딱.. 내가 이게 MRI에요 그러면서.. 장침을 막 쑤셔대는데.. 아우.. 안아픈 게 아니라.. 더 아퍼.. 더 아퍼.. 이게 아픔으로 아픔을 잊게 해주는거죠.. 그런데 그런 것들이 있어요.. 분명히.. 여백이 있습니다.. 비과학적이라고 무조건.. 인간하고 안맞는 게 아니에요.. 학문적이지 않은 게 아닙니다.. 비과학적이라고 해서.. 왜냐하면 과학도 하나의 정의니까.. 그러니까 그 여백을.. 마련해주는.. 그 새롭게 질서로.. 기하학적 질서로 마련해주는 그 영토가 한의학인데.. 그래서 혈은 되게 중요한 개념인데.. 기.. 기 어딨어? MRI찍어봐.. 기.. 나오나.. 그래서.. 그리고 MRI도 완벽하게 만들어진 현미경은 아니죠? 그거 염색하는 거니까요.. 그거 우주사진 이에요.. 우주사진.. 똑같은 거에요.. 그러니까 그것을 안다면 완벽하게 볼 수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전제도 알아야 되는데.. 안타깝죠. 그런 영토를 볼 수 없는 사람들이 혈을 잘 찾을 수 있다는 것도 참 재밌는 사실이잖아요? 그건 사실인데.. 그걸 없애버리는 것은 너무 아쉽습니다.. 미국도 안없애는데.. 한국 대단해.. 한국은.. 미국은 대마초를 많이 쓰죠 그래서.. 의료.. 치료행위로.. 많이 씁니다.. 병원가면 더 아프니까.. 막.. 미국은.. 많이 씁니다.. 그래서 대체의학시장이 되게 활성화되어있죠..한국은 되게 웃겨.. 그래서 공정한 경쟁이 아닙니다.. 이거.. 공정한 경쟁이 되게 국가가 개입하지 말아야지.. 최소한으로 개입해야지.. 국가가 개입해서 너는 경쟁하지 마라.. 이게 어떻게 공정합니까? 환자가 위험할 수 있으니 너는 개입하지 마.. 그걸 니가 왜 판단하는데? 그렇죠? 신기하죠.. 갑시다 시대공명.. 

-제목은 아침보약, 감정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기사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게.. -보약.. 보약이라잖아? 감정에 대해서 알면.. -감정이 보약이라는 뜻이에요? -감정에 대해서 알면.. 그게 보약이 된다.. 그런 뜻이겠지.. -대단합니다 진짜..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기사입니다.. 애니의 내용은 생략하고.. 감정은 환경에 반응하여 발생하는 느낌과 기분을 말한다.. 라고 이렇게 정의를 내리셨네요.. 감정을 통해서 인간은 태어난 후 외부 환경에 접촉하고 교류하면서 나는 어떤 사람이다 라는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감정이 형성시켜주는 건 아닐 것 같은데? -그렇죠.. 국가가 형성해 주죠.. -나이가 들고 성숙하면서 다양하게 분화되는데 나를 위협하는 상황에서의 두려움.. 나에게 이로운 상황은 기쁨.. 이 두 가지에서부터 다섯가지 혹은 학자에 따라 일곱가지 혹은 그 이상으로 분류한다.. -네, 여기는 두려움과 기쁨이라고 정의했는데 스피노자는 -기쁨과 슬픔 -네 기쁨과 슬픔이라고 정의했죠? -중간에 욕망을 두고.. -그런데 나는 쾌와 불쾌라고 그냥 얘기합니다.. 그리고 쾌와 불쾌가 양과 음이라고도 얘기하고.. 이게 더 한의학적인 것 같은데.. 그렇죠? 그러니까 자기가 배운 이론과 쓰는 글의 괴리가.. 아우 미치겠어요.. 이게.. 있어요.. 확신이 없는거야.. 확신이.. 확신이 개념을 만드는데.. 이게 확신이 없는거죠.. 앎과 삶이 분리되었다는 게.. 글 보면 알아요.. -한의학적으로는 음과 양이 맞지.. -네.. 글 보면 압니다.. 앎과 삶이 분리돼있다는 걸..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눈치를 보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요.. 눈치를 보는거지 때문에..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뜻이죠.. 환경에 처해져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시대의 눈치를 자꾸 보죠.. 한의학을 자꾸 과학화하는 눈치를 보는거죠.. 그래야지 맹인을 없애니까.. 하여튼 그렇습니다.. -동북아시아 전통의학에서는 감정을 희노애락 4가지로, 혹은 희노우사비공경의 7정으로 말한다.. 일찍이 7정이 몸과 마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걸 인식했다.. 감정을 잘 인식하고 조절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에 훈련이 필요하다.. 감정을 인식하거나 언어적으로 표현하는데 어려움을 보이는 상태인 감정표현불능증은 많은 신체와 장애 환자에게 나타나며 다양한 정신장애와 소화불량 편두통 위장장애와 같은 신체적인 질병들과도 함께 나타날 수 있다.. 내가 나임을 알 수 있는 존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감정에 대해서 앞으로 하나씩 살펴볼까한다.. 라는 기사입니다.. -저는 이 기사에서 이 말을 보고 깜짝놀랐는데요. 뭐냐하면 감정 조절이 잘 안되어 오래되면 몸과 마음의 질병으로 이환될 수 있고, 우리의 행복감과 거리가 멀어지는 훈련이 필요하다.. 멀어지게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의 행복감이라는 말에 꽂혔습니다.. -우리의 행복감? -그러니까 이 기사에 감정을 이해하는..  두 가지로 제시돼요.. 감정의 이해를 두 가지로 제시하죠.. 하나는 행복감이고.. 감정을 이해해야될 이유가..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서고.. 두 번째는 질병을 막는 것입니다.. 그렇죠? 이게 우리의 이데올로기에요.. 행복이 아닙니다. 행복감이에요.. 아 놀라워요.. 이 말은 어떤 말인가? 놀랍다.. 싶었어요.. 그리고 이제 -행복감정.. -네.. 행복감.. -행복이 직접적인 게 아니라.. 그것도 감정으로써 그냥.. -아.. 감정이 아니요.. 감은 이미지에요.. 이미지.. 표상.. 행복이라는 이미지를 내 신체랑 이렇게 체험하는거죠.. 행복감.. 왜냐하면 행복이라는 것을 우리가 정의할 수 없으니까.. 그냥 이게 행복감이다.. 라고 하는 이미지, 표상을 나한테 이렇게 엎는 겁니다.. 둘째가 질병을 막는 거에요.. 그러니까 우리 이데올로기가 있죠.. 확실하게.. 한의사한테는.. 그렇죠? 두 가지죠.. 뭐냐하면.. 오래사는 거야.. 장수와 행복감.. 이거에요.. 그렇죠? 장수할려면 행복감을 느껴야 된다..? 이게 완전히 예속돼있는 겁니다..  완전히 예속되어있는 거에요.. 여기에 뭐 자유에 대한 감수성 이런 문제는 제기하지도 않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되는.. 이게 맞기 때문에 우리는 감정을 이해한다? 이런 형이상학적 본질.. 형이상학적 본질은 존재와 연관된다는.. 이 일원론적 관점은 없습니다. 한의학은 되게 일원론적인건데 원래.. 그러니까 이게 건강염려 또한 예속 아닙니까? 행복감 또한 예속이에요.. 왜 예속이냐면 외부의존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들뢰즈가 내재성의 논리, 내재성의 논리.. 하는 거에요.. 그건 완벽성의 논리..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중세를 해야돼.. 존재론 할려면.. 개연적이기 때문이죠.. 또.. 두번째는.. 외부의존적이고 개연적이에요.. 완전하지 않아요.. -우발적인라는 거야. 외부성은 우발적인거지.. -그렇죠.. 우발적인거죠.. 그러면 이런 착시가 왜 발생하는가를 읽으면 되죠.. 감정에 대해 이해한다라는 사람들도 감정을 이해하지 않고, 감정이 이미지로 체제가 갖고 있는 폭력성을 재생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사람들이 이것을 납득하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사람들은.. 보통의 사람들은 왜 이것을 납득하는가? 에티카 1부 부록에 이런 말이 있어요.. 인간은 자신이 자애롭다고 여긴다.. 이게 문제에요.. 이게..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의욕과 충동을 의식하지만 그들로 하여금 충동이나 의식에 사로잡히게끔하는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그것에 관해서 꿈에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을 하나의 편견이라고 얘기했어.. -그렇죠.. 편견인거죠.. 오류에요.. 스피노자는 이를 내적 무지상태 라고 하죠.. 이 내적 무지상태 속에서는 예속돼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롭다고 느낀다는 거에요.. 이 착각, 이 편견은 어디서 오냐? 만물이, 온 천지가 자신에게 맞춰져 있다고 착각합니다.. 이게 개인주의이죠.. 개인주의의 연원, 뿌리가 이거야..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착각입니다. 이것은 .. 이성의 법칙이 아니라.. 표상의 개연.. 이미지의 개연성을 가지고 만물을 파악하는거죠.. 그래야지만 코나투스, 존재의 보존의 욕망이 그나마 가동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예속되어있는 거에요.. 이거 완벽하게.. 예속되어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미지 속에 갇혀있는 거에요.. 세계는 나를 위해서 움직이지 않아요.. 편견입니다.. 이거.. 이게 내적무지상태가 강화되는 거에요.. 그러니까 행복감이라는 것.. 행복감이라는 게 뭐냐하면 나의 존재를 확인시켜줄 때 누리는(?느끼는?) 포만감이에요.. 내가 왜 살아있을 수 있는가?라는 확실성을 느낄 때.. 그러니까 삶의 의미라고 하죠.. 삶의 의미가 다가왔을 때 느끼는 행복감이에요.. 그런데 그걸 간접체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거죠.. 표상이라는 건.. 간접체험해도 내 문제로 여기는거죠.. 그러니까 나와 타인에 대한 분리도 일어나지 않은 거에요.. 이게.. 그러니까 모니터에서 슬픈 이야기를 보면 감정 느끼고 막.. 이렇게 느낀다음에 이게 펑펑 울고 그러면 해결된거에요.. 뭐가 해결되는거죠? 그러니까 다시 비용을 지불하고 또 이 한의사를 찾아 가야 돼.. 그러니까 외부의존적이라는 거에요.. 외부의존적인데 어떻게 자유롭습니까? 그 사람이 없으면 나는 구속되는데? 맞죠? 이런 거에요.. 이런건 내적인 무지상태에요.. 내가 나를 모르는 것이고.. 내가 나를 모른다는 것은 내가 세계를 모른다는 뜻과 같은 뜻이에요.. 나는 세계랑 엮여 있으니까.. 그러니까 자기를 자유롭다고 생각한다니까? 그냥.. 이게 내가 구속되어 있다고 생각해야, 예속되어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그래서 필연적인 규칙 속에 내 어떤 자리가 있다..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나는 내가 하면 다 할 수 있어, 나는 자유로워..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벗어날 수가 없는겁니다.. 자, 에티카 4부 인간예속 또는 정서의 힘에 관하여..라는 것을 조금 톺아봅니다.. 복기부터 할게요.. 감정에 복종하는 인간은 왜 예속된 것인가? 이 질문부터 합시다. 다시 복기하는 거야.. 감정의 충만에서 행복감을 느끼기도 하지 않는가? 행복감을 느끼면 되는 거 아닌가? 행복감이 자유라고 믿는 것은 왜 잘못인가? 이런 질문도 할 수 있죠. 행복하기 위해 산다는 말까지 있잖아? 그렇죠? -그게 행복이 삶의 목적이라고 보는 사람들의 경향성이 대다수지.. -그리고 그들은 자유롭다고 느끼는 게 무슨 잘못이냐? 이렇게 질문할 수 있죠. -그렇지.. 자유롭다는데 내가 무슨 할 말이 있나? -할말이 없죠.? 그들이 왜 예속인가? 그들이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반복하지만.. 불완전해요.. 불완전하기 때문에 예속입니다. 존재가 본질이 되려면 붙어 있어야 되거든.. 그러니까 의존적이야.. 의존적인 게 예속적인거죠.. 독립적이지 않은데 어떻게 자유입니까? 그렇죠? 스피노자 에티카 1부 신에 대하여..에서 정의하길 나는 자기 원인이란 그것의 본질이 존재를 포함하는 것.. 또는 그것의 본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실체다.. 그게.. -그게 실체죠.. 그러니까 어떤 결과의 원인이 외부에 의해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자기 원인일 때.. 이게 본질적인거라는 거지.. 존재가 본질적인 거라는 거야.. 존재가 본질적인 것이 완전한거죠.. 그러니까 존재가 본질적이고 완전할 때 우리는 자유롭죠.. 이렇게 나가죠? 존재의 궁극은 실재성이죠? 실재.. 리얼..실재성.. 그렇죠? 이것을 행복감이 실재성이다.. 라고 하면 불완전하지? 그렇죠? 실재성이라고 하면.. 본질의 궁극은 완전성입니다.. 따라서 존재와 본질이 같으려면 실재가 완전해야돼.. 그렇지? 물리학적으로.. 실재.. 진짜가 완전해야 돼.. 가짜가 완전하면 안돼.. 진짜가 완전해야 존재가 본질로서 붙어 있고 우리는 자유로운 거죠.. 그러면 진짜가 완전해야 된다는 거야.. 허위가 완전한 게 아니라.. 맞죠? 스피노자는 에티카 4부 머리말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표현합니다.. 나는 완전성을 실재성이라고 이해한다.. 즉 각각의 사물이 특정한 방식으로 존재하며 작용하는 한 완전성은 그 사물의 본질이다.. 여기서 사물이 만물이에요.. 만물은 인간을 포함합니다.. 이걸 막 인간.. 포함하는데 인간만 특정할려고 개물로 막 표현.. 개물은 뭐야? 이씨.. 번역해가지고.. 왜냐하면 우리는 개체라는 말을 써야 되는데, 개체라는 말은 몸 체자를 쓰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물과 체를 분리해서 쓰잖아요? 그런데 서양에서는 물과 체를 분리해서 쓰지 않아요.. 그래서 그게 이해가 좀 다른데.. 붙어서 막.. 맥락에 따라 이헤해야 되는데.. 우리는 막 분리해가지고 개물이 뭐야? 개물이? 아무튼.. 애씀.. 코나투스가 완전한 진짜 존재에 도달할 때 우리는 자유라고 명명할 수 있죠.. 자유에 근접했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그 유명한 실체, 속성, 양태를 톺아보면서 설명합시다.. 실체는 존재와 본질에 완전히 붙어있는 거다.. 그렇죠? 스스로가 자기 원인인 완전한.. 이건 신이랄 수밖에 없는거죠.. 신일 수밖에 없어.. 완벽한 실체가 있다라면.. 그걸 대상을 만약에 우리가 지칭한다면.. 신이라고 지칭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그다음에 그 신은 두 가지 속성을 갖고, 무한한 속성을 갖고 있는데,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속서은 두 가지. 연장과 사유라고 했어요.. 그 본질의 성질이죠.. 이건. 존재가 본질의 성질이 된거야.. 그랬다가 양태라는.. 지난 방송에.. 설명한.. 존재가 본질을 표현하는 것.. -표현하고 구체화 된 것.. -네.. 표현하는 것.. 그러니까 자체 성질 표현이라는 단계가 있다고 그랬어요.. 이렇게 구조화돼 있는데, 양태가 속성과 실체의 차원으로 위상을 격상하는 것을 우리는 자유라고 명명할 수 있겠죠.. -자유에 가까워지는 것.. -그렇죠.. 격상하는 것을.. 이를.. 어떻게 이것을 할 수가 있느냐? 그러니까 코나투스를 활용하면 돼요. 코나투스는 선도 악도 아니고 빛도 어둠도 아닙니다.. 이건 중의적인 개념이에요.. 코나투스는.. 완벽한 중의적인 개념.. 신을 제외한 모든 양태들이 갖고 있는 잠재성이 코나투스 입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유한한 사물이 갖고 있는 잠재성이에요.. 유한한 양태의 본질인 것이죠.. 그러니까 유한한 양태에는 본질적으로 코나투스를 갖고 있습니다.. 애씀.. 뭐? 자기보존을 할려는 애씀.. 왜냐하면 자기 보존의 추구는 본성적이라는 거야.. 절대적이고 필연적이라는 뜻입니다.. 죽고 싶어요? 불가능하나고.. 그래서 자살에 대해서도 얘기를 해요.. 자기를 무화시키는 거라고.. 존재를 무화시키는 거라고.. 이것은 존재가 아닌거지.. 그러니까 유한성을 부정하는 거죠.. 이해 갔죠? -그러니까 자기보존성이라는 게 나온 곳으로부터 다시 돌아갈려고 하는.. 실체라고 하는 나온 곳이잖아? 그 능산.. -아니에요.. 아닙니다.. 그것은 이제 우리가 사유의 차원에서 하는 것이고.. 이 코나투스의 자기보존성은 그냥 충동이에요.. -그냥 충동? -내가 때릴려고 하면 막을려고 하는 것이고, 위험한 곳에서는 도망갈려고 하는 것이고.. 이게 충동이에요.. 그래서 필연적인거야.. 누구나 그렇기 때문에.. 그러니까 존재, 있음.. 이거.. 지속적으로 있어버리고 싶다는 거죠.. 지속적으로 계속.. 있고싶다는 거야.. 존재는.. 그러니까 선험적인 명령인 거야.. 증명이 필요 없다는 거야.. 이거는.. 코나투스는.. 왜냐하면 이거는 약속 정의야 정의.. 정의.. 코나투스는.. 정의기 때문에 뭐가 필요 없다고? 증명이 필요 없어.. 증명이 필요한 것에 따라 정의, 공리, 정리.. 이렇게 나눈거죠.. 정리에 가면 증명이 더 필요한거야.. 덜 필요한 게 정의.. 약속.. 정의는 필요 없는거죠.. 그런데 코나투스가 욕망으로 변용가능하단 거에요.. 우리의 희망은.. 욕망으로 변용 가능하다.. 그 말은.. 욕망은 언어죠? 코나투스가 언어화돼서 변용될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러면 코나투스의 그 맹목성을.. 맹목성으로부터 우리가 예속되는 것을 어느정도는 통제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언어를 통해 방향성을 만들어줄 수 있다? 위로..? -방향성뿐만 아니라 방향의 지속성인거죠.. 그러니까 코나투스 특성은 있음의 지속성이니까.. 방향의 지속성.. -그것에 대한 방향을 만들어줄 수 있다? -방향의 지속성을.. 방향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욕망은 방향이 아니에요.. 욕망은 방향이 아니야.. 욕망은 끌리는 거니까.. 욕망은 방향이 아닙니다.. 여기가 맞다고 해서 다 가지 않아.. 안가.. 욕망이 아니면.. 뭐냐하면 욕망은 능동성을 갖고 있거든요.. 능동적인 코나투스인데 언어화돼있는 거에요.. 그래서 여기서(?역시?) 핵심인거에요.. 욕망.. 그래서 누구야? 라캉도 그래서 욕망, 욕망 하는 거야.. 여기서 따온 거에요.. 욕망은 능동적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그러면 욕망이 완전하게 하는 것을 의욕한다면? -좋지 그러면.. -완전성을 의욕한다면 당연하게 되는 것이죠.. 굿이죠.. 이렇게 에티카 4부 부록 3항엔 이렇게 표현돼있어요.. 우리들의 능동성.. 활동.. 우리들의 능동성, 즉 인간의 능력이나 이성에 따라 규정되는 욕망은 언제나 선하지만 기타의 욕망은 선일 수도 있고, 악일 수도 있다.. 이걸 깨달으면 된다는 거야.. 욕망이 능동적이면.. 선할 수 있어.. 좋을 수 있다고.. 욕망이 피동적이면? 남의 욕망을 따라하는 그 피동성이면 이건 뭐야? 이것은 악입니다.. 나쁘다.. 라는 거에요.. 이걸 이해하면 된다는 거야.. 코나투스가 욕망화 될 때.. 능동성을 띠느냐? 안띠느냐? 거기만 보면 되는 거에요.. 저는 능동성이기 보다는 자발성을 뜻하는데.. 자발적이냐? 아니냐? 라는 것이지.. 욕망은.. 자발적 욕망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니까? 자유로울 수 있으면서.. 욕망이 능동적이면 선인데 피동적이면 악이라고 얘가 얘기 했다고.. 스피노자가.. 내가 얘기한 게 아니라.. 나는 선악을 몰라.. 좋고.. 능동적이면.. 코나투스는 좋은 충동이고, 피동적이면 나쁜 충동이다..라고 해석하면 되겠죠.. 부록 4항을 한 번 더 덧대서 설명합니다.. 이성에 따라 인도되는 인간의 궁극 목적.. 즉 그로하여금 여타의 모든 욕망을 통솔하게끔 하는 최고의 욕망은 그 자신과 그의 인식에 속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타당하게 파악하도록 하는 욕망이다.. 그러니까 이게 무슨 얘기냐하면.. 아주 편해요.. 그러니까.. 욕망을 가질 바에는 최고의 욕망을 가져야 된다는 거에요.. 정말 어려운 거.. 그렇죠? 이걸 지속할 때 우리는 코나투스를 좋은 쪽으로.. 만들고 우리는 자유의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거지.. 허접쓰레기같은 욕망을 가지고 있으면은 우리는 뭐한다고? 예속된다는 뜻이야.. 쉽게 말하면.. 최고의 욕망을 가지는거죠.. 욕망 중에 감정.. 욕망의 동력이 감정인데.. 감정 중에 최고는 뭐야? 사랑이지? 또는? 분노지.. 그래서 최고로 사랑하는 사람과 최고로 분노를 보인 사람은 역사..라는 이름의 명패를 남기면서 존재를 증명하죠.. 그렇죠? 나머지.. 기쁨과 화.. 차원은 없어.. 최고로 화내는 사람은 그 가족사에 이름을 남기죠.. 계속 뒷담화의 재료로 쓰이니까.. 최고로 기쁨을 남긴 사람도 가족사에 영향을 남기죠.. 직장사랑 가족사에.. 혼자만 즐거운 사람은 아무도 기억 안합니다.. 짜증만 부리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기억 안해요.. 기억의 차원에서 사라져.. 아예 휘발해버려요.. 그러니까 있음을 증명할 어떤 방법도 없어.. 이게 당연한 겁니다.. 야속하지만.. 그래서 최고의 욕망을 품지 않으면 우리는 있다..라는 증명 방식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어요.. 지워집니다.. 지워져요.. 이런거죠.. -자유주의자들이 좀 들어야 되겠네.. -그렇죠.. 차라리 화내라.. 차라리 화를 내라.. 이런 거에요.. 그러면 타당하게 파악하는 욕망.. 능동적으로 활동할 때 만들어진 그 욕망.. 그 최고의 욕망.. 여기에 요구되는 것은 이성이죠.. 이성이 요구됩니다.. 그러니까 세계를 이치에 맞게 파악하고.. 기하학적으로.. 그렇죠? 원리적으로.. 설계도 차원으로 세계를 읽고, 자기 주변도 읽고, 나라는 존재도 읽는 거에요.. 그 존재를 읽다보면.. 나는 되게 미물이에요.. 나를 중심으로 세계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내가 엄청난 미물이라는 것을 깨닫는 차원에서 우리는 그 예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에너지가 나오는 거에요.. 그렇죠? 그런데 이걸 자꾸 모르게 해.. 당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것을..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하찮은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때 거기서 출발하는 거거든? 너 엄청 하찮은거야.. 너는 대체 가능.. 엄청 대체가능한 인간이야.. 이걸 알면서 부터.. 우리는 아, 이건 아니야.. 라고 하는 욕망이.. 코나투스의 자기보존의 욕망이 출현하는데. 계속 우리는 립서비스로.. 너는 뭐야? 할 수 있어.. 너는 최고로 아름다운 사람이야.. 이거에 너무 적응돼있어서.. 착각이 착각을 불러오고.. 착각이 착각을 불러옵니다.. 그래서 그 착각으로 산업이 돌아가죠.. 체제가 주인인거야.. 스피노자에 의하면 인간은 미물입니다..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할 수 없을거야..가 정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최고의 욕망을 꿈꿀 수 있다니까? 왜? 욕망이 있으니까.. 언어가 있으니까.. 그렇죠? 재밌는거죠.. 에티카 4부 부록 제12항을 한 번 더 읽어봅니다.. 인간에게는 서로 교제하며 그들 전체를 하나로 만들기에 가장 맞는 유대를 결속하는 것.. 일반적으로 말해 우정의 강화에 도움이 되는 행위가 무엇보다 유익하다.. 우정.. 이거 들뢰즈도 강조했던 그 우정.. 무엇보다 유익하대요.. -에피쿠로스.. -네, 에피쿠로스.. 맞아 에피쿠로스.. 그러나.. 13항.. 에티카 4부 부록 13항.. 그러나.. 이것을 위해서는 기량과 주의가 요구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다양하긴 하지만 이성의 법칙에 따라서 생활하는 자는 드물기 때문에 대체로 질투하거나 동정보다는 복수에 기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질투하거나 복수한다는거야.. 기량과 주의가 필요하다는 거지.. 아무나 우정을 나눌 수 없다는 겁니다.. 진짜야.. 이거.. 심각하긴 하지만 저도 매한가지인데.. 우정을 나누려고 막 같이 여러 번 시도를 했었는데.. 늘.. 빠져나갔어요.. 그 빠져나간 이유는 딱 한 가지.. 이성의 법칙에 대해서 모른척 하거든.. 그 고통을 못견뎌서 나가는거지.. 그러니까 생각이라는 확신은 그 고통이 비용을 지불 못해서 나가는거야.. 그러니까 욕망을 높은 차원으로 가지고 가야 되는데 욕망을 낮은 차원으로 자꾸만 만들려고 하니까 나가는 거죠.. 안타깝게도.. 그런데.. 그래서 기량과 주의가 필요합니다.. 저도 많이 나갔어요.. 날 싫어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어.. 그 싫어하는 것은 그 사람이 뭔가를 탐하는 것을 우리는 이기성이라고 하죠? 나는 태어나면서 누군가 것을 한 번도 탐해본 적이 없어요.. 왜냐하면 나한테 필요한 게 타인에게 별로 없더라고.. 똥팔씨 한테 빚 한번 진 적 있어요.. 집 지을 때.. 신용대출 받아가지고 나한테 준 거.. 없어.. 내가 필요한 거 타인에게 없어.. 당연한 겁니다.. 20여년 책을 읽는 동안은 내가 필요한 게 타인에게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타인은 자기가 필요한 게 나한테 있기 때문에 접근한 경우가 훨씬 많았죠.. 있었어요.. 나는 언어라고 하는 아주 금은보화를 갖고 있었으니까.. 그러면 왔다가 이 욕망을 올리면 나를 혁신해야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날라가는거야.. 거기서 논쟁이 붙죠.. 그런데 농쟁하면 안되는데.. 거기서 논쟁이 붙어요.. 그러면 쓰레기 같은 이 잡담들이 막 나오잖아.. 막 어쨌고.. 필요한 건 그게 아니라 이성의 법칙인데.. 그렇죠? 거기서부터 관계가 깨지는 것을 이제야 알겠어요.. 기량과 주의를 내가 기울이지 않았다는 걸.. 요즘엔 많이 기량과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대지의 진리를 복원해야 한다고 저는 주장합니다.. 이건 내 주장이에요.. -대지의 진리? -응.. 땅의 진리.. 그러니까 니체의 주장이요..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2권에 좋은 경작지 라는 제목의 글이 있어요.. 이걸 애들하고 쓰다가 따온 겁니다.. 니체의 주장인데.. 뭐냐하면 거절하고 부정하는 거잖아요? 뭘? 높은 욕망을 갖자는 것을.. 그렇죠? 고통이라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기 위해서.. 그렇죠? 다시 예속으로 가겠다는 거죠? 감옥을 나왔는데 다시 감옥을 들어가자는 거잖아? 감옥을 나왔는데 여기가 너무 힘들어.. 그러니까 같이 뭔가를 해보자고 하는 게 깨지고.. 자기는 그냥 감옥에 들어가겠다는 거 아니에요? 열쇠 달라고.. 그런거죠.. 빼왔더니 스스로 들어가는 거야.. 왜 이렇게 자꾸 스스로 감옥에 예속되는가? 왜 그 가짜 이미지.. 허위에.. 진짜 실재를 만나야지 본질의 차원에서 자유가 체감되는데.. 허위와 표상과 이미지와 가짜에 이렇게 휘둘리는가.. 이거에요.. 좋은 경작지는.. 이건 꼭 써보고 한번 다시 되뇌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모든 거절과 부정은 생식력의 결여를 나타낸다.. 이야.. 훌륭합니다.. 생식력의 결여.. 훌륭하죠? 왜 생식력의 결여야? 코나투스.. 코나투스랑 반대되는거니까.. 표상.. 이미지에 취해있으면 생식력이 떨어집니다.. 생식력이.. 성욕이 떨어진다고.. 만약 우리가 좋은 경작지이기야 하다면.. 좋은 경작지이기야 하다면.. 우리는 이용하지 않은 채 아무것도 썩히지 않고.. 모든 일과 사건과 인간에게 바람직한 거름.. 비.. 혹은 햇빛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씁니다.. 그러니까 대지로 와야 생식력이 복원되고, 생식력이 복원돼야 코나투스를 생식력의 차원으로 최고의 욕망의 차원으로 승격할 수 있다..라는 뜻이죠.. 이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이 질문을 하고 갑시다.. 시대 공명은 아니지만.. 왜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로 압도적으로 아이를 낳지 않는가.. 이 질문을 하면 되죠.. 경작지를 망쳐놨기 때문 아닙니까? 대지의 진리를 잃어버렸지.. 대지의 진리를 잃어버린 존재는 모든 거절과 부정이라는 냉소주의를 산출합니다.. 이 냉소주의는 생식능력을 떨어뜨리고.. 자기 보존의 애씀을.. 이는 코나투스를 배타적으로 사용하도록 이끌어요.. 끌어내리고 싶다는거지.. 다.. 이 배타성이 완전하지 않기에 예속입니다.. 따라서 자유가 아니죠.. 대지의 진리를 복원시킬 수 있을 때.. 우리는 감정이라고하는 예속에서부터 약간은 벗어날 수 있습니다.. 벗어난다는 말은 좀.. 어울리지 않네요.. 예속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압도할 수 있구요.. 결론 갑니다.. 

에밀 시오랑 들어봤죠? 에밀 시오랑.. 지금 이 순간이 나는 아프다.. 아 죽이잖아? 책 제목? 에밀 시오랑.. 허무주의.. 냉소주의.. 회의주의.. 에밀 시오랑.. 프랑스적이죠.. 완전.. -나는 지금 아프다? -지금 이 순간이 나는 아프다.. -지금 이 순간이 나는 아프다.. 나 맨날 아퍼.. 이씨.. -나는 지금 이 순간이 아프다.. 책의 제목입니다.. 에밀 시오랑이.. 이 책에 이런 말을 써놓습니다.. 신자가 아니고.. 무신론자도 아닐 때.. 신에 대해 말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 중 어느 것도 될 수 없다는 데에 우리 모두의 신학자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비극이 있다.. 아주 프랑스적이죠.. 이거.. 신기하죠? 신자도 아니고 무신론자도 아닐 때.. 신을 말하기.. 무한에 대해.. 존재에 대해.. 제대로..  형이상학적인 것에 대해.. 존재론에 대해서.. 왜 사는지 의미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우리는 아무도 아니야.. 그것도.. -둘 다 아니야.. -둘 다 아니야.. 이게 우리 모두의 비극이라는 거죠.. 시오랑은 이런 말을 덧댑니다.. 그런데.. 작가에게 있어서.. 초탈과 해방을 향한 진전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재앙이다.. 오히려 작가는 초탈과 해방이 열리면 이건 재앙이라는 거야.. 재앙이라는거야.. 왜 재앙이냐? 그는 누구보다도 제 결점을 필요로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결점을.. 그래야 상상력을 구동하면서 작품을 남기니까.. 그 결점을 이겨낼 때 그는 끝장이다.. 결점이 없으면 끝장이라는거야.. 작가는.. 그러므로 그는 보다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야.. 이 사실주의 진짜 죽이지.. 에밀 시오랑이.. 여기에 희망이 있는 거에요.. -네가 작가가 되려면 계속 결점을 안고 살아라? -당연한거죠.. -그런데 우리는 참 완벽한.. 이게 비극이 있는데 그 완벽한.. 다른 사람은 완벽하겠지? 이렇게 착각해요.. 다 결점 투성입니다.. 애쓰는 거에요.. -그러면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그럼~ -애쓰는 사람은? -애쓰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거에요.. 막 에티카 읽어야 되는데 못읽으면 어떡해? 못읽으면 어떻게해.. 어떡하긴.. 그냥 어떡하는거지 뭘.. 어떻게 해.. 패턴만 만들어 놓으면 되죠.. 그렇죠? 너무 걱정해..그러면 아예 결핍이 없기 때문에 코나투스가 작동도 안해.. 생식력이 더 떨어지지요.. 자꾸 표상, 이미지로 도망갑니다.. 갑자기 완전성을 바라니까.. 에밀 시오랑도 얘기했잖아요.. 신자도 아니고 무신론자도 아닌 나 같은 경우는 이거 결점 투성이인데.. 이 결점 투성이를 바꾸면 나는 끝장난다. . 나의 존재는 끝장 난다.. 그렇기 때문에 안고 가는거죠..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지.. 에티카의 마지막 말이 이거라잖아? 그러나 모든 고귀한 것은 힘들뿐만 아니라 드물다.. 애쓰는 겁니다..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딨습니까? 나는 완전한 작가가 아니야.. 라면서 글을 써.. 상상만 하지 말고.. 나는 완전한 작가가 아닌데 왜 글을 안써? 아.. 글쓰기 너무 어려워요.. 글을 써.. 어려우니까.. 왜 안써? 자.. 나는 공부할 게 너무 많아.. 공부를 해.. 공부를 안하고 왜 공부한다는 말만해? 애써.. 애쓰면 돼요.. 애쓰면 되지.. 아.. 나는 흙수저라서.. 열심히 살어.. 흙수저인데.. 흙묻히면서.. 왜 복권을 사? -안샀어.. -이해가 안가.. 나는 이해가.. 또 예속되는 거에요.. 복권을 사면.. 흙수저면 열심히 살어.. 노동력으로.. 어떻게 노예가 주인을 이겼는지 알면 돼요.. 그러면 자유로워요! 애쓰면 되지.. 왜 안해? 왜? 왜 표상으로 자꾸만.. 이미지로 강탈당하는 거에요.. 따끔하게 얘기하고 싶어요.. 감정계단을 거기에 이렇게 도표를 그려.. 그다음에 내가 어느 차원에 있는지 자꾸 확인해.. 직장에서 다이어리는 쓰고 포스트잇 막 붙여가지고 놓치지 않는거 찾으려고 하면서 존재에서 놓치는 것은 왜 이렇게 많아? 그걸 챙겨야지.. 직장은 놓쳐도 돼.. 짤리지 않을 선에서 까딱까딱.. 이게 또 생의 맛 아닙니까? 공문이 내려오면 어떻게 해? 마지노선에.. 똥줄 타게.. 대충.. 한번 전화 오면 다시 한다.. 뭐 이런거죠.. 그렇게 하면 되죠.. 막 두려워서.. 직장에서 두려워서.. 혹시 낙인 찍히지 않을까봐(?찍힐까봐..?) 아까 쉬는 시간에 얘기한 것 중에 오바마가 왔을 때 한국 기자들에 질문해보라고.. 여기 한국이니까.. 그래가지고 한국 기자들한테 막 질문하라니까 쭈뼛쭈뼛 눈치만 보다가 질문도 못해가지고 중국 기자가 내가 할게요! 라고 막 얘기했다고 그랬잖아요? 우리 스케일이 그거야.. 뭔 공포도.. 위협이 실질이 있어야 공포를 느끼는거지.. 위협의 실질이 1인데 막 10만큼 느끼는거죠..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해.. 뭘 어떻게 해? 그건 안타까워요.. 그게 아니에요.. 최고의 욕망을 꿈꿀 때 자유롭기 때문에 우리의 욕망이 최고의 차원으로 올라와야 돼.. 스케일을 키웁시다.. 스케일을 키워야 돼.. 진짜.. 너무 내부경쟁용이야.. 그래도 잔인하고 집요하고 힘들잖아.. 거기도.. 스케일을 키워야지.. 조금 더 큰 것을 욕망합니다.. 내 인생의 목적은 스피노자 에티카를 백번 읽는 것.. 이게 좋은 목표야.. 왜 안해? 이런거는.. 씨.. 이런 거 하면 되잖아? 그치? 왜 사는지 여기 다 있어.. 여기.. 제대로.. 한번 백번 읽어봐.. 이것에 대한 책이 안써지나.. 안써질 수가 없어.. 써져.. 이게.. 안써질 수가 없어.. 저도 한.. 40~50번 읽은 책들 여럿 있는데.. 많지는 않아요.. 그런데 그것을 통해서 문체도 만들고 생각도 비비고.. 다 그렇게 된거에요. 그냥.. 하면 되는 거에요.. 쉬워.. 똥 쌀 때마다 들고 가도 돼.. 그런데 이게 쉽지 않죠.. 왜 쉽지 않아? 우리의 의욕이 너무 오랫동안.. 자유랑 -멀어져 있어.. 길들여져 있고.. 다른 것에.. 예속.. -구타당했어요.. 존재가 너무 오랫동안 구타 당했다고.. 그래서 배짱이 없어.. 너무 오랫동안 맞았는데.. 때리지 마! 씨.. 이걸 한 번도 못해본거야.. 후두려 맞았어요.. 그래서 머리를 조아리는데 너무 익숙하다는 겁니다.. 존재에서 최고의 1번은 자신감이에요.. 그 자신감이야.. 내가 살아있다..라는 거야.. 자신감이야.. 그게 존재라는 말의 정의 입니다.. 살아 있다.. = 자신감.. 살아있지 않은 거야.. 자신감이 없다면.. 그렇죠? 그리고 용기는요.. 감정으로 내는 게 아니야.. 그것은 흥분이지.. 용기는 머리로 내는 겁니다.. 머리로 내는 거야.. 용기는 분별력이고.. 용기는 지성이고.. 용기는 이성이에요.. 머리로 내는 거야.. 용기는 기하학화 되어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내가 낼 수 있는 용기.. 2번 상황에서 내가 낼 수 있는 용기.. 그러니까 기하학화 돼있다고.. 이거 구조화돼있는거야.. 용기는 머리로 내는 거에요.. 그걸 잊어버린다는거죠..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우리는 예속 될 수 없어요.. 한 번 뿐인 인생인데.. 아껴야죠.. 아껴야지.. 저는 아까 감정 계단 쓰면서.. 승리를 맛보아야 합니다.. 승리를.. 저속한 것에 승리를 맛보더라도 괜찮아요.. 저속하다는 말도 잘 모르겠는데.. 단지.. 아주 외부의존적인 거 있잖아요?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것들에서 승리를 맛보면 이건 배타적인 코나투스기 때문에 반드시 큰 비용을 지불하거니와.. 불완전합니다.. 내가 결정한 것을 내가 스스로 해나갈 수 있을 때 자유롭거든요.. 그러면 내가 결정하면 되지.. 하루를.. 산다면 하루를 존재를 지배하면 되고.. 이틀을 살았다면 이틀의 존재를 지배하면 되고. .30년을 살았다면 30년의 존재를.. 시간을 지배하면 되고.. 50년을 살았다면 50년의 시간을 지배하면 되죠.. 지배의 통제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예속당하는 것이고.. 예속 당했을 때 우리는 계속적으로 삶을 소모시키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죠? 감정 계단.. 원석을 돌망치로 쥐어박을 수 있는 용기가 흥분의 시대인 청춘 때는 있지만.. 중년, 장년으로 들어갔을 때.. 그 용기는.. 그 흥분력은.. 그 행복감이라는 것.. 이거 마모됩니다.. 이거 마모됐을 때 우리가 해찰할 수 있는 측면은 정신적인 거에요.. 육체는 소모하지만 정신은 올라오거든요.. 나이가 들수록.. 올라옵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이게 자유롭게 사는 것이고.. 나는 자유롭게 사는 것이 아름답게 사는 것이고.. 제대로 사는 것은 같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에티카를 읽어보시고..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거.. 다른 책 읽지 마세요.. 에티카 읽어요.. 다른 책 내가 몇 권 읽어봤는데.. 한국에도 한국 작가들이 쓴 것.. 그거 개판이야.. 읽지 마.. 그냥 이거 읽으세요.. 내 방송 듣고.. 읽으면 읽혀져요.. 안읽혀지면 감정계단 어디서 구해가지고 한번 훅 훑어보고 또 읽어보면 읽혀집니다..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내가 엔딩멘트에 써놨어.. -아, 잘했어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이제 합리론자.. 근대 중기도 마무리되어 가네요.. -한명 남았네요.. -다음 라이프니츠 남았네요.. 라이프니츠도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라이프니츠를 통해서 바로크를 조금 볼거에요.. 바로크.. -바로크? -네.. 그렇다고 들뢰즈의.. 라이프니츠와 바로크에 대한 책.. 그건 읽지 마세요.. 그건 진짜.. 안읽어야 될 책입니다.. 들뢰즈가 쓴.. 그건 안읽어도 될 책이고.. 안읽어야 될 책이기 때문에.. 그건 읽지 않아도 될 거에요.. 제가 알아서 정의해줄테니까.. 그런걸 미리 에습하지는 마시고. .라이프니츠이고. 합리론이 끝나고.. 합리론이 왜 어떻게 끝나게 되는지.. -그럼 라이프니츠의 읽어야 될 책은 변신론? 아니면 신인간지성론? -안읽어도 돼요.. 라이프니츠의 책은 굳이 안읽어도 되는데.. 미분과 적분에 대한 이야기를 할거니까.. 굳이 읽겠다고하면 라이프니츠가 중국에 대해서 쓴 책이 있어요.. 그 책 읽으면 재밌어요.. 그 책은.. 그거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하튼.. 바로크입니다.. 예고를 해드리고..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네.. 저도 이제 에티카를 읽었습니다.. 읽히더라구요.. 읽었는데.. -본 게 아니고? 다행이네.. -열심히 읽으니까.. 읽히더라구요.. 그런데 한 번 읽었는데.. 아니.. 이제 한 번을 읽었는데.. 맨날 읽다 포기 하다가.. 읽다 포기하다가.. 그런데 그 1,2부가 난 조금 1, 2부가 아직도 잘 정리가 안돼요.. 그런데 3부로 넘어오니까 잘 읽히더라고.. 3, 4부.. 이렇게 넘어오니까.. 교회를 다녔는데.. 카톨릭을 다녔어야지.. 교회를 다니니까 1, 2부 얘기들이.. 그러니까 정신과 신에 대해서 이해가 안가고 이제 감정에 대해서만 이해가 가.. 너무 신체구속적이야 우리 똥팔씨.. 밑에가.. 위에.. 1부가 형이상학적이고.. 형이하학적으로.. 밑으로.. 이제 쭉 내려오는거죠? 형이하학이라는 말은 없는데.. 아무튼.. 가장 존재론적인 것의 완성에서.. 양태 쪽으로 내려오는 거에요.. -양태 쪽으로 내려오니까 이해 돼.. -그러니까 신체 구속적이라는거죠.. 몸의 지배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자유로워야지.. -여러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용기를 얻었어.. 나 원전 읽어야겠구나.. 이제.. -원전 읽어요.. 원전이 제일 쉽습니다.. -네.. 

자, 이렇게해서 우리 스피노자.. 빠이빠이 보내고.. 다음편에는 라이프니츠..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자유로운 사람은 결코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면 그의 지혜는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성찰이다.. 삶을 성찰해 봅시다.. 끝!

-공감은 감정의 표면을 교환하는 방식으로써 에둘러 해석하고자 하는 조급함이기에.. 느끼라 하지 읽으라하지 않는다.. 읽으려면 언어가 필횬한데.. 우리는 감정을 읽어낼 언어가 부재하고.. 알고 싶다는 욕망마저 거세당했다. 언어가 없으니 고개만 끄덕이면 해소되는 것으로 착각한다.. 순응은 자연스러운 결과이고 감정의 찌꺼기들은 쌓인다.. 무형이기에 애써 형을 입혀야 감각되고 그래야 지성은 작동한다.. 감정을 언어로 구조해야 하는 이유다.. 또한 그게 윤리이고 스피노자다.. 책 에티카가 어렵다면 감정 계단을 강력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