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1. 18. 16:28ㆍ철학의 역사
https://youtu.be/0UoTMCPkMp8?si=F5I5Et42JLoptgXm
인격은 사물이 아니다.. 존재는 무가 아니다.. 삶은 허구가 아니다.. 인생은 숫자가 아니다.. 톺아보라.. 그때그때마다 깨어 있으라.. 쉼이 필요한가? 자극을 닫아라.. 문제도 답안도 간결하다.. 철학 또한 그렇다..
세계에 있었으나 미처 깨닫지 못한 철학의 영광을 위한 방송.. 두 남자의 철학 수다.. 철학의 역사편 제 119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네, 반갑습니다.. 일상 생활의 혁명을 지속하는 매력남 일지매 똥팔씨 입니다. -인문학도 메뚝씨 입니다. 겨울이 옵니다. 겨울이 오네요. 사나운 겨울.. 겨울이 오면 환희가 있어야 그 사람의 존재의 질량이 이제 싹트는 거죠.. 사나운 겨울은 항상 존재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인 것이죠? 무섭다면 그만큼 미진한 것이고, 기대된다면 모험을 기다리는 모험가처럼.. 무언가를 하고 있다..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겨울이니까.. 우리는 또 준비 태세를 해야겠죠? 확실한 삶의 좌표를 위해서.. 그러니까.. 이상한 게.. 일년 잘 하고 죽는 게 아니라는 거에요.. 우리는.. 삶이라는 게.. 연애 잘 하고 성공하는 결혼.. 이런거 판타지이듯이.. 그런거 아니라는거죠? 중요한건 근성인데.. 겨울이 옵니다.. 또 한 번의.. 이제 10년의 겨울을 맞을거고, 20년의 겨울을 맞으면 또.. 새로운 감수성이 생산될지도 모르겠으나..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문제도 답안도 항상 간결합니다..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지금 잘못 살고 있다는 뜻이죠? 그러니까 철학이 이해 안된다는 것은 잘못 읽었다는.. 성실하게 안읽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솔직하게 얘기하면.. 안어려워요.. 너무 어려워서 못하겠어요.. 그러면 안읽은거야.. 장담컨대.. 이러면 또 청취자 떨어지겠죠? 괜찮아.. 안읽은거야.. 정직하게 말한다는 것이 정직하게 산다는 것이.. 왜 문제가 돼야 되는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정직하게 산다는 게 왜 문제가 돼야 되죠? 왜 관계를 위해서 정직이 문제가 돼야 되나? 관계가 문제인데.. 신기한거죠.. 그렇죠? 그 말을 상기해 두면서.. 오늘 심화편.. 왜냐하면 심화편이 머리가 약간 복잡하잖아요? 그래서 이미 밑밥으로 깔아두고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게.. 이정도 가면 이제 철학사를 대충이라도 감각할 수 없으면 듣기가 어려울 겁니다.. 그래서 신규로 듣는 분들이 이정도 오면 없어요.. 저도 이해는 합니다.. -중간에 들어오기가 쉽지 않지.. -괜찮아.. 없을거에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게 문제가 아니라 지속하는 사람들이 더 중요한 탓에.. 유료로 바꾸기도 하고.. 그다음에 이제.. 근성으로 그냥 이어가는건데.. 새로운 독(?청)자분들 들어오셔가지고 만약에.. 들었는데.. 너무 힘들다.. 이거 어떻게 이해하냐? 그러면 처음부터 들으세요.. 이걸 어떻게 처음부터 듣냐? 몇년 걸린다.. 몇년 걸리는 거야.. 이건 거래의.. 관계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존재의 생기를 위해서인데요.. 생기를 위해서라는 것은.. 사무엘 베케트가 자기는 세기가 아프다.. 뭐 이런 말을 표현한 적 있잖아요? 저는 이제 세계가 아프다..라고 표현하겠는데.. 어떤 사람들의 감수성은 있잖아요? 옆에서 들어오는 뒷통수 한 대 때리면 그게 짜증나는 거에요. 그게 화가 나는 것.. 어떤 사람들의 감수성은 세계가 썩어가는 게 아픈거거든요? 어떤 사람의 내면이 썩어가는 게 아픈 것이고.. 세계가 썩어가는 게 아픈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철학은 그런 감수성에서.. 그런 윤리학에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에.. 세계가 썩어가면 철학은 상당히 아픕니다.. 그리고 고통을 감수하는 것이죠? 때문에 그 고통 속에서 생기를 놓치지 않는 방법을 그나마 증명하는 거에요.. 존재의 삶으로.. 저는 제 삶으로 증명하는거죠.. 언어를 비벼서.. 다른거 없습니다.. 다른거 없어요.. 다른거 다 사기야.. 그 삶으로 증명하는거죠.. 그 삶으로 증명하기 때문에 존재론이 중요한 맥락인 것이고.. 이쯤.. 증명을 읽어낼려면 그 사람에 대한 증명을 읽으려면 오래 걸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뭐.. 대충 알아서 될 교양을 뭐하러 알어? 몰라도 되는 교양인데..뭘.. 그거 힘들게 뭐하러 아냐고? 그냥 직장 생활 열심히 해.. 저는 그렇게 충고하고 싶습니다.. 이왕 알거면 제대로 알던가.. 아니면 그냥 직장생활 열심히 하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노동 열심히 하고.. 이러면 되죠.. 아 이것도 알아야 될 것 같은데.. 저것도 해야 될 것 같은데.. 안해도 돼.. 그 잡스러운 것.. 그럴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해야 되겠다.. 싶으면 도움을 드리고 싶고.. 세계가 아픈 시간이니까.. 그렇게 하고 싶은 게 정직한 제 의견입니다.. 자, 또 정의 내려야죠? 유심론의 아버지 입니다.. 유심론의 아버지.. 유심론이란 말은 뭐.. 우리가 심성술.. 이런 식으로 인식할 수 있을텐데.. 사실은 유심론의 아버지다..라고 한 것은 제가 아니라 쇼펜하우어가 한 말이에요.. 쇼펜하우어가 버클리를 두고 그는 유심론의 아버지다.. 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니까 버클리가 대결하고 싶었던 것은 데카르트 말브랑슈 로크.. 전부다에요.. 웃긴 게 당대에 있었던.. -관념론자거나 경험론자..? -관념론자 아니죠.. 데카르트는 합리론자..라고 하죠.. -아, 합리론자.. -합리론자.. 말브랑슈.. 합리론자와 경험론자.. 둘 다.. 둘 다 그의 적대 세력이었습니다.. -모두까기야? -아, 모두까기입니다.. 왜냐하면 타락하고 있다는거죠.. 그러니까 오성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의 인식 수준이 어떤 기계론적인 것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심리적인거나? -네.. 그다음에 물자 생산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이 이득과 생활 수준도 높아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물질주의에 빠져드는 그 형국을 이제 버클리는 비판하고자 또 모두까기.. 둘 다 비판하게 된 것이겠죠.. 이 결을 읽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쇼펜하우어가 회의주의를 이야기할 때 그 회의주의가 데카르트의 회의주의랑 다른 이유가.. 데카르트 회의주의는 회의주의가 아닙니다. 플라톤주의적 회의주의인 것이죠.. 그러니까 진짜를.. 리얼을 보기 위해서 의심하는 것일 뿐이지.. 냉소를 퍼붓지는 않아요.. 그런데 쇼펜하우어는 냉소를 퍼붓죠.. 이유는.. 너무나 실증적인 관찰을 통해서 일어난거에요.. 너무나 실증적인 관찰을 통해서.. 안바뀌는 인간들.. 그렇죠? 그리고 안바뀌는 자기 자신.. 이런 것들이 있죠.. 그러니까 고만고만 한 것에 고만고만하게 유혹당하고 만족해버리는.. 훌륭한 말이 있죠..? 유튜브 이제 올라갈텐데.. 우리는 고만고만한 것을 고통스러워한다.. 왜? 고만고만한 것에 위안을 받기 때문에.. 그러니까 문제는 위안을.. 고만고만한 것에 위안을 받는 것을 없애야 돼요.. 그래야지 고만고만한 것의 고통이 사라지는데.. 거꾸로 해.. 고통이 사라지기 위해서 고만고만한 것의 유혹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고만고만한 것에 고통받는 사람은 고만고만한 것에 유혹받는 사람이야.. 그렇기 때문에 쇼펜하우어는 당대에.. 특히 제국주의가 완전히 폭발하고 있었던 그 시대에.. 쇼펜하우어는 이제 다 까기.. 다 거부해버렸죠.. 신도 죽었는데.. 씨발.. 그러면서.. 하지만 버클리 책은 읽었습니다.. 유심론에 대해서 이야기해 봐야 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물질주의를 벗어나는 비법 같은 것이겠죠.. 교육 출판 공사에서 나온 철학 대사전이 있어요.. 싸구려 책인데.. 일본 것 베낀.. 거기에 이제 이렇게 정의돼있습니다.. 그래서 번역을 잘 읽어야 돼요.. 아무거나 막 쓰거든요.. 그러니까 막.. 존재도 막 현실이라고 번역하기도 하고.. 그럽니다.. 어이 없지만 그런 번역이 가능해요.. 왜냐하면 리얼이니까.. 현실이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와 진짜 황당하지만.. 그런 번역이 너무 많아요.. 우리나라 번역서에도.. 정신은 비물체적인 것.. 물체로부터 구별될 수 있는 독자적인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하며.. 세계의 참 실재는 궁국에 있어서 심적인 것이며.. 현실 존재보다도.. 정신이 보다 근원적이라고 보는 형이상학적인 견해.. 압축하면 유물론의 대어.. 유물론의 반댓말.. 그러니까 유심론은 관념론의 뿌리입니다.. 그래서 유심론의 시작은 플라톤이죠.. 그리고 플라톤의 이데아는 개물들.. 그러니까 하나하나 낱낱의 사물들의 원형이자 근원이겠죠? 이것이 이제 중세에 가면 플로티노스로 계승되는거죠.. 플로티노스는 우리가 사는 이 사물의 세계, 이 감각계, 현상계는.. 초감각계의 유출이다.. 그렇죠? 그래서 진짜 리얼은 이 감각계가 아니라 초감각계의 유출.. 초감각계에 있다.. 이거지.. 이게 바로 유심론이고.. 그다음에 관념론.. 우리가 정신줄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유심론도 조금 나눠서 볼 필요가 있는데요.. 유심론도.. 두 가지 경우가 있어요.. 하나는.. 어떤 근원적인 정신이 이렇게 실체로서 보는 것.. 그다음에 운동으로서 보는 것.. 다릅니다.. 그러니까 실체로서 보는 것은 실체론적 유심론.. 이라고 정의하구요.. 실제로 철학에서.. 그다음에 이제 운동으로 보는 것을 현실론적 유심론.. 이렇게 봅니다.. 이게 좀 이상하긴 한데.. 번역이.. 일본어 번역이.. 이상하긴 한데.. 여하튼 이유는 있어요.. 뭐냐하면 실체론적 유림론은 중세적인 형이상학입니다.. -약간 신적인 것을 딱 떠올리지? -네.. 신이 어떤.. 실체.. 라는 것은.. 사물처럼 인지가능한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주지.. -그러니까 신은 확실히 있어야 하니까.. 확고부동하게 있어야 하니까.. 그런데 현실론적 유심론은 헤라클레스적인 거에요.. -변증법적인? 운동? -그렇죠.. 그래서 변증법적 형이상학이라는 말이 더 맞을텐데.. 앞의 것을 실체론이라고 했으니까 뒤에를 현실론이라고 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고.. 그리고 이 변증법적인 그 형이상학의 토대를 잘못 이용하면.. 잘못 이용하면.. 실증주의적인 결과 만나기도 하거든요.. 그게 빅데이터 입니다.. 빅데이터.. 변증법.. 빅데이터의 변증법적 운동.. 그렇죠? 그러니까 그것은 실체적이진 않잖아요? 실체적이라는건 우리가 만질 수 있거나 감각할 수 있다는 뜻인데.. 그렇죠? 빅데이터는 만질 수가 없잖아요..? 비물질적인 것은 만질 수 없죠? 정신적인 것이라도 만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정신을 못만진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돼요.. 꿈에서 만져요.. 그리고 우리가 감각이 대부분은 정신적인 것에서 기원합니다.. 그래서 만져요.. 착각하면 안돼.. 우리가 사물을 이렇게 댈 때.. 이 대는 게 대는 게 아니에요.. 벌어져 있습니다.. 실제로 보면.. 물질적으로 보면.. 물질적으로 보면 정신적인 답이 나와요.. 인간은 열려 있어요? 닫혀 있어요? -인간은 열려있죠.. -열려있죠..? 죽으면 닫혀요.. 해체되니까.. 열려 있어요.. 입구멍에서 똥구멍까지 열려 있어요.. 그리고 세포도 열려 있습니다.. 장누수증후군이라고 있어요.. 똥팔씨 들어봤어요? -들어봤어요.. -장이 이렇게 벌어지는거죠? 그래서 거기서 누수.. 그러니까 영양분이 이렇게 유출되면서 면역 세계에 과반응을 일으키는 만성염증의 원흉.. 이런건데..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 대부분의 세계 사람들.. 거의 다수가 장누수증후군을 앓고 있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원인은 바로 그 자극적인 음식물의 섭취이겠죠? 그다음에 단순당들.. 이런 것들 많이 먹으면 장이 누수돼요.. 특히나 장누수에 헥심적인 게.. 밀가루입니다.. 밀가루.. 밀가루에 뭐가 들어있어? 밀가루 단백질.. 글루텐이 들어가있죠? 글루텐.. 그 글루텐을 소화하는데.. 장 내부에 있는.. 대장 내부나 소장 내부에 있는 그 미세균들이 엄청 힘들어해요.. 그래서 가스를 막.. -걔네를 소화시키느라고? -글루텐을.. 가스를 엄청 내뿜거든요..? 그 가스 때문에 장이 열립니다.. 그래서 밀가루를 먹으면 장누수 100%입니다.. 100%에요.. 그거 회복되는데 다섯 시간 여섯 시간 걸려요.. 다시 닫히는 데.. 그런데 건강한 사람들도 열렸다 닫혔다 합니다.. 그렇죠? 그런데 만성 염증과 피로가 높은 사람들.. 막 매사가 귀찮고 의욕이 없는 사람들.. -장누수야? -100%에요.. 의욕이 없으면 밀가루를 먹어요.. 밀가루를 먹으면 도파민이 증진되니까.. 그러니까 단순당을 먹으면 뇌회로로 바로 들어가기 때문에 도파민 중독인거죠.. 그러니까 간식을 먹잖아요? 간식을 먹으면.. 밀가루를 먹으면 피곤하거든.. 그러니까 커피를 먹지.. 같이.. 악순환이지.. -그래서 밀가루 음식이.. 우리 몸에 독소를 내뿜는다고 해서 항상 무랑 같이 먹으라고.. 그래서 중국집에서 단무지 나온다는 얘기도 있었어.. -아, 그것은 혈당 피크를 막기 때문에 그러는데.. 무가 아니라 거기에 들어 있는 무에 친 식초가 중요한거에요.. 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식초.. 식초가 혈당 피크를 막거든요.. 혈당이 팍 올라가는 것을 조절해줘.. 완만하게 올라가도록.. 그래서 식초 쭉 짜먹어.. 밀가루 먹을 때.. 그러면 덜 피곤할 수 있어요.. 진짜로 해보면.. 답이 바로 나옵니다.. 아무튼.. 이 장누수.. 그러니까 열려 있다.. 장도.. 내장에서 잘라봐.. 이게 열려 있을 것 같아? 가위로 잘라보면 알아요.. 잘라보면.. 우와.. 진짜 질기잖아요? 그런데 그것도 열려 있다고.. 그러니까 우리가 갖고 있는 시각이라는 게.. 이게 관찰이 얼마나 어설프고 서름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인것이죠.. 그러니까 정신은 그냥 있고.. 물체가 확실하고 정신은 뭐 확실하지 않고 이런 식의 사고 방식은 낡은거다.. -버클리가 많이 얘기하지.. -네, 많이 얘기하죠.. 그래서 이게 헤라클레이토스적 형이상학이 칸트의 인식론적 관념론으로 발전하고.. 그다음에 피히테의 윤리적 유심론으로 발전하고.. 셀링의 미적 유심론으로 발전.. 셀링이 제일 예쁘긴 한데.. 헤겔의 논리적 유심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 이제.. 유심론에서 관념론의 발전 역사에요.. 이렇게 쭈욱 이어지는 겁니다.. 따라서 관념론은 비현실적이다..라는 생각은.. 철학적 계보를 완전히 공부 안한 완벽한 오류인 것이죠.. 완벽한 오류입니다.. 무지의 소치.. 장난아니게 무지한거죠.. 무슨 관념론은 관념이 최고니까.. 그러면 물질론은 물질이 최고냐? 유물론은? 그런게 아니죠.. 그렇죠? 유심론은 쇼펜하우어 계열로 나오면 이제 변형본이 발생하는데.. 그걸 생철학이라고 합니다.. 생철학.. 딜타이.. 니체를 넣기도 하죠.. 위키 백과에 생철학은 이렇게 규정되어 있는데요.. 생의 철학이란 합리주의에 반기를 들고.. 그것에 불신 내지 반항하며 생의 응결.. 생의 경화에서 벗어나 어디까지나 싱싱하게 살아 있는 생 자체만을 파악하려는 것이다.. 싱싱하게.. 생생.. 그러니까 생기죠.. 그러니까 응결이나 경화라는.. 이것도 일본 것 베낀건데.. 응결.. 생의 응결이나 생의 경화라는 말.. 있죠? 응결이라는 것은.. 응집되는거죠.. 경화되는 것은 고체화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사물을 단위로.. 생을 단위로 나누면 응결되고 경화된다는 것이죠.. 그렇지? 고체화되고 그다음에 딱딱해진다는 뜻입니다.. 그렇죠? 생을 단위로 나눈다는건 숫자화시킨다는 뜻이겠죠.. 그렇지? 그래서 생철학은 로고스보다 파토스를 철학 위에 둘려는 경향.. 그러면 생철학의 어원인 유심론도 당연하게 파토스를 로고스보다 위에 둘려는 경향이지.. 그런데 정신적인건 로고스에 가까워요? 파토스에 가까워요? -로고스에 가깝지.. -그렇죠? 그런데 파토스를 위에 둔대.. 정신적인데.. 웃기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이런 카테고리로는 범주로는.. 이해불가한거지..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유심론을 주장한 사람들 대부분은 엘리트주의적이에요.. 거의 다야.. 당연합니다.. 왜? 정신활동이니까.. 정신이 근원이기 때문에.. 정신을 다루는 사람만이 근원을 다루는 사람이죠.. 실재와 접선하는 사람이고.. 틀린 말은 아닙니다.. 틀린 말은 아니에요.. 하이데거가 엄청 대표적이죠.. 하이데거는 무식하면 꺼지라는 게.. 글을 읽으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헤겔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여기에 이것을 보완하기 위해서 나온 철학자가 저는 니체와 마르크스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니체는 잠재적 천재성을 모두 공언한거죠? 누구나 위버멘쉬가 될 수 있다.. 그렇지? 그다음에 맑스는 연대적 힘을 초월적이라고 생각했죠.. 연대적 힘.. 사실 연대적 힘은 대부분 반동적입니다.. 싸코디로마를 예로 들면 알 수 있어요.. 그러니까 반문명이 연대하잖아요? 폭력은 장난이 아니에요.. 그렇죠?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천년의 역사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게르만들이 로마를 붕괴시킬 때도 그랬고.. 그렇죠? 그다음에 중세가 들어올 때 아테네가 망가질 때도 그랬고.. 아테네가 이오니아에 한 짓거리도 그거죠? 아테네가.. 이오니아에 한 짓거리도 그겁니다.. 반문명.. 그들은 연대의 힘으로 한거잖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놨지.. 하지만 유심론은 관념론의 뿌리다.. 그리고 유물론과는 대립할려고 하는 경향이다.. 그래서 사실 세속론과 대립하려는 경향이 더 많죠.. 유물론보다.. 왜냐하면 맑스도 유물론자니까.. 세속론자.. 이런 카테고리가 상당히 헷갈리기 때문에.. 그래서 루카치가 그런 수정주의.. 아낙사고라스같은 수정주의를 한거야.. 처음에 디자인 할 때는 정신적이지만 그 이후에는 과학적이다.. 이런 이야기를 한거거든요? 안그러면 이게 이 공통점과 차이점이 분류될 수가 없어요.. 그렇죠? 니체와 맑스가 비슷하다니.. 비슷하다고요.. 비슷해요.. 엘리트주의에 대한 거부감에서는 비슷합니다.. 니체는 철저하게 느꼈어요.. 엘리트주의가 얼마나 배타적이고 정직하지 않은지를.. 얼마나 사람들을 대충 대하는지를 철저하게 알았다구요.. 그런데 자기가 보기에 관찰하는 인간이니까.. 생철학자니까.. 자기가 보기에 진짜 성실하게 정직하게 노동하는 사람들.. 그리고 정직하게 공부하는 사람들.. 치열한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홀대 받고.. 신분 높다고 돈 많다고 태어난 놈들.. 그들은 조금만 해도 대우 받고.. 얼마나 가식적이야? 그렇죠? 그게 다 보이는거죠.. 니체에게는.. 맑스도 마찬가자죠.. 자기도 혜택 받은 인간인데.. 그 혜택을 버린거죠.. 그들은 엘레트주의의 그 독점에 대해서 정치적으로 공격하고 싶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완벽하게 다른 입장의 철학자잖아? 그렇죠? 그래서 제가 니체를 왼쪽, 맑스를 오른쪽에 항상 붙이고 다니는 이유기도 하겠죠.. 그런데 유심론은 그래서 세속론을 비판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물의 실재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물의 실재.. 여기 있다는 것.. 실재를 완전히 부정할 수가 어떻게 있어요? 이게? 가능해? 이게? 불가능해 이게.. 없어.. 이거 정신병자야.. 불가능하다는거죠? -하일라스가 계속 얘기하는거야.. -어, 하일라스가 계속 얘기하죠.. -야, 있는데 왜 자꾸 그래? -있다는건 인정하죠.. 있다는건 인정하는데 그게 거기에 있냐고 물어보죠.. 필로누스가.. 필로누스와 하일라스의 대화.. 세편의 대화에서 보면.. 필로누스가 하일라스한테 계속 물어요.. 그게 거기 있니..? 그러니까 그 실재성이 거기 있냐는거야.. 사물 안에.. 왜 여기 실재성이.. 이 사물 안에 있으면 안돼? 라고 반론할 수 있죠.. 사물은 사물 자체지 뭘 어렵게 그렇게 생각해? 할 수 있어요.. 그렇기도 했고.. 그런데 자기가 봐도 이게 아닌 것 같은거야.. 만약에 여기에 사물의 실재성이 있다면.. 이게 있으면 이거.. 그러면 실재가 한 두 가지가 아니라 수십만만가지이기도 하거니와 스스로 만들어.. 이거.. 실재가.. 이 물질이.. 그렇죠? 우연히 만들어지고.. 필연성은 아무 것도 없어.. 이거.. 모든 물질이 필연성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면 신성 어디가? 필연성이.. 다 조작된 우연성인거야.. -그렇지.. 우리 감각에 의해서.. -여기 사물의 실재성을 인정한다면.. 그렇죠? 그러니까 이거 아닌거지.. 신성을 부정하는 것 같잖아? 그러면 다시 시작해야 되는거야.. 그래서 세 번의 질문을 하면서 이어가는 책이 그 책입니다.. 이게 사물의 실재성을 부정하는건 아니에요.. 사물은 있다..라고 알아요.. 하지만 유심론의 핵심은 그런게 중요한 게 아니야.. 뭐 이렇게 그걸 중요하다고 생각해? 유심론이니까 반대적으로 유물론은 이거.. 현실성.. 이 사물이 중요한, 쓸모가 중요한거고.. 유심론은 이거 없는거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안된다는거죠.. 유물론은 쓸데없는 엘리트주의를 비판할 때 또 쓰는거죠? 어떻게 써? 말이 아니라 행위로 해라.. 임마.. 새끼야.. 이걸 할 때 유물론이 필요한거지.. 유심론은 또 다른거죠.. 너 너무 드럽다.. 새끼.. 물질주의 새끼.. 이거.. 물욕.. 이걸 비판할 때 바로 쓰는게 유심론인거죠.. 너 타락했다.. 이게 유심론이에요.. 그러니까 둘다.. 유물론과 유심론 다.. 공격하는 대상이 비슷해.. 속물주의야.. 그런데 유심론은 형이상학을 절대 포기할려고 하지 않아요.. 유물론은 형이상학 정도는 좀.. 담아두고.. 과학적인 것을 더.. 추구하자.. 이런 운동이라면.. 유심론은 아.. 형이상학 못 포기해..! 이런거죠.. 그러니까 싸구려가 되지 않기 위해서 철학이 수립되는거야.. 모든 철학은.. 당대의 그 물질주의를 경계.. 그 물욕을 경계하기 위해서 유심론이 나온 것이지.. 내가 옳아.. 이게 진리니까.. 공격 앞으로! 이걸 할려고 하는게 아닙니다.. 형이상학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은 존재론을 포기하지 않겠다는거야.. 그렇죠? 존재론이 뭐냐..? 그러니까.. 늘 강조하는 존재론은 유한한 존재가 무한을 욕망하는 거에요.. 존재론의 그냥 끝이야.. 그게.. 유한한 존재가 무한을 욕망하는 것.. 왜 사느냐? 왜 의미.. 왜 살아? 우리가 답이 없죠? 왜 답이 없어? -무한하니까? 내가 펼쳐져 있는 바깥.. -무한하니까? 농담 좋은데? 우리가 무한과 접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의 세계를 확고하게 믿는 사람들은 왜 사는 이유? 당연한.. -신이 살아 있어? -어.. 성직자는 아주 투명해.. 그렇죠? 신에게 복종하기 위해서.. 아주 투명하다고요.. 때문에 그들은 타락할 일이 별로 없죠.. 제대로 된 신학자는.. 땡땡이들 말고. .그게 당연한거죠.. 그런데 유한한 존재를 무한의 경지로 끌어올리지 못하면.. 보편으로 사고하는 철학의 토대가 무너지고.. 그렇죠? 물질에 지배를 받는 천박한 생각은 어쩔 수 없는 경향으로 굳어집니다.. 그런데 그 물질의 지배에서 계속 벗어날려고 하는 힘 있죠? 그 힘을 우리가 관조라고 합니다.. 그런데 완벽하게 벗어나면 좋겠는데.. 칸트가 조금.. 왼손으로 조금 잡은 것 같아서.. 쇼펜하우어가 유명한 말을 만들잖아요? 칸트는 관조를 몰라 비겁했다.. 이런 말을 남기기도 하죠.. 다른 측면으로 유심론이 대두된 이유를 한 번 톺아봅니다.. 이것은 반복되는 역사 과정이에요.. 철학적 경향.. 이런 경향은.. 지금 이제 올 때가 됐어요.. 유심론적 경향이.. 그래서 엄청 정신주의를 막 떠드는 사람들을 욕하면서.. 이게 많은 이유가 그겁니다.. 그런데 논리학이 빠진 것은 그건 철학 아닙니다.. 니체의 문체(하인즈 슐라퍼?)라는 책이 있어요.. 예전에 한 번 소개한 적이 있어요.. 여기에 1장에 말과 숫자라는 단락이 있습니다.. 잉고 슐체(?)라는 독일의 작가가 쓴 주장인데 한 번 인용해 볼게요.. 유심론을 이해하는데 아주 좋습니다.. 구동독 시대에 숫자가 말 뒤로 사라졌다면 이제 동독이 몰락한 시점에서 말이 숫자 뒤로 사라졌다.. 신기하죠? 모두들 말의 세계에서 숫자의 세계로 들어갔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쩌면 구동독은 경제보다 말.. 즉 이데올로기를 앞세웠기 때문에.. 망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거죠.. 그러니까 공산주의 운동이 유심론적 경향 때문에 망했다는 뜻입니다.. 이게.. 신기한거죠.. 그런데 유심론적 경향 때문에 망했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동독이 해체됐다는 것은.. 동독은 해체되기 전에는 말이 중요했다고.. 언어가 -말을 앞세웠다는거지..(?) -존재를 붙여야 되니까.. -이념을 앞에서웠다는거지.. -그렇죠.. 앞세웠는데.. 지금은 -통계.. -숫자 뒤로 말이 사라져버린거야.. 그래서 독일이라는 경제가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살았던.. 그 말로써 살았던 존재론은 붕괴됐다는 뜻이지.. 그렇죠? 그런데 지금 이 사회가 똑같은 사회 아닙니까? 온갖 숫자가 난무하죠? 말은 사라지고 있어요.. 사람들은 말을 싫어해.. 말을 아끼지 않습니다.. 언어를 예쁜 언어.. 말랑한 언어로.. 아름다운 언어.. 이런거 관심 없어요.. 숫자에 0하나 더 붙인 것을 엄청 열광합니다.. 0이 뭐야.. 그냥.. 1 하나만 붙여도.. 그래서 인스타에 조회수 늘릴려고 난리잖아.. 유튜브 조회수 늘릴려고 난리야.. 그 숫자에.. 미쳐.. 미쳤어.. 그렇죠? -좋아요, 구독!~ -그러니까 계속 좋아요, 구독 눌러주세요.. 사랑입니다~ 뭔.. 너하고 왜 사랑해? 내가? 그런 말이 너무나 넘쳐나죠? 그러니까 숫자에 존재를 투사한.. 유물론이 공산주의가.. 유심론적 경향을 띠었던 이유는 고대 그리스적 경향도 같고, 로마적 윤리의식도 같고, 중세적 존재론도 다 같은 경향인데.. 그러니까 꼬뮤니즘, 공동체 주의는 단지 반동의 계급 혁명이 아니라는거죠.. 그리고 유심론도 단지 그냥 정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런게 아니라는거야.. 그렇죠? 존재론적 운동이라는 것이.. 사람들이 물질적으로 타락하는 것을.. 그 속돼지는 것을 보고 난 후에 고통 속에서 수립된 학문이라는 겁니다.. 여기를 읽어야 된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마르크스가 앎을 혁명의 토대로 삼았던 이유가 그거죠.. 안그러면 반동으로 끝난다.. 지랄하는 것.. 제일 편해요.. 혁명할 때.. -사코디로마처럼..? -네.. 혁명할 때.. 누가 내 앞 서 있고.. 돈 많고.. 지위 높은 것 같잖아요? 그거 끌어 내리면 돼.. 그냥.. 그게 혁명이라고 생각하면은.. 그게 무슨 혁명이야? 봉기지.. 지랄.. 그렇죠? 이거 안된다는 거야.. 그러면 그걸.. 그렇게 안되면 유심론적 요소.. 다시 말하면 정신주의, 존재론, 형이상학.. 이게 앎이에요.. 이게 앎.. 앎은 형이상학이야.. 존재론이야.. 그래서 맑스는 존재론을 포기하지 않은거야.. 그렇게 어려운거야.. 그래서.. 헤겔을 하도 읽어가지고.. 이게 포기하면 안되거든.. 이해 갔죠? 유심론을 알기 위해서는 아주 심플한 질문만 하면 됩니다.. 유심론이 왜 살아있어야 하느냐..? 왜 유심론이 중요하냐? 똥팔씨 물질과 영혼 중에 뭐가 중요하죠? -물질과 영혼.. 중에? 당장 사는 데는 물질이 중요하고 잘 살려면 영혼이 중요하지.. -그래서 우리가 천박하다는거야.. 왜냐하면 물질이 중요하다고 살아요..? 그다음에 영혼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물질이 중요하다고 살아요.. 물질이 중요하다고.. 어떤 선택의 우선 순위든 다 물질이 중요해.. 그런데 영혼이 중요하다고.. 말해요.. 신기하죠? 제가 양평에서 떠나온 이유도.. 여기는 땅이 안팔립니다.. 양평은 땅이 팔려.. 빌어먹을.. 거래가.. 거기는 거래 관계가 있어요.. 때문에 거기는 있잖아요? 물질의 유혹에서 벗어나기가 좀 어려워요.. 집값도 생각해야 되고.. 다 손해보지 않으려고 난리야.. 영혼이 타락하는거죠.. 영혼이 타락합니다.. 물질의 지배를 받으면.. 당연한 거에요.. 또 하나 질문해볼게요.. 질료와 형상 중에 무엇이 천하고 귀하죠? 질료와 형상.. 조금 고급스러운 말로.. 물질과 영혼은 속되니까.. 질료와 형상 중에.. 뭐가 귀하고 뭐가 천합니까? 그거 가치판단 내리기 어렵죠? 질료가 중요하면 이것은 유물론.. 그다음에 형상이 중요하면 이것은 유심론.. 이렇게 할 수 있지만.. 그래.. 여기까지는 다를(?) 수 있겠다.. 그러면 정신과 육체 중에는 뭐가 중요하죠? -정신과 육체 중에? 정신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육체를 사랑하는 것 같아서.. 참 곤란하네? -그렇죠.. 맞죠.. 그러니까 그렇게 산다고요.. 이게 체제의 폭력이자 스스로에게 하는 자기학대인거죠.. 그런데 버틀란트 러셀은 그래서 유심론을 이해를 못합니다.. 러셀은 이렇게 쓰는데요.. 아예.. -육체를 사랑해? -아니 그러니까 그렇게 분열되는 과정에 자기도 처해 있기 때문에 그런거에요.. 자기 존재가 그렇게 분열돼있는 과정에 있으면 그런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거에요.. 그는 지각을 지각과 지각대상과의 관계라는 설을 부인한다.. 지각이 지각과 지각 사물.. 지각 대상과의 관계라는 설을 부인한다.. 그는 자아를 하나의 실체로 믿고 있으므로 이 설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었으나 자아를 실체로 믿고 있다.. 지각이 중요하니까.. 자아를 실체로.. 그는 그 반대의 편을 들었다.. 실체적 자아의 개념을 부인한 사람에게 이 학설은 불가능하다.. 이렇게 설명을 써놔요.. 가능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가능해요.. 왜 가능하냐? 실체적 자아를 부정해도 인정해도.. 지각과 지각 대상의 관계를 정의할 수 있습니다.. 무슨 얘기냐? 뉴턴이 과학자 입니까? 뉴턴.. 과학자잖아요? 하지만 뉴턴 시대의 사람들은 뉴턴을 뭐라고 봤다고? 신학자로 봤지.. 그렇죠? 이러한 차이가 어떻게 발생하느냐..? 이거야.. 지각.. 지각의 차이가.. 당연한건데.. 그러니까 지각하는 사람의 인식주관에서 갇혀있지 않다고.. 지각이.. 지각하는 사람.. 그 내부에 소속된 게 아니라는거죠.. 지각이.. 그렇죠? 이 말은 뭐냐하면.. 감각적인 관찰을 통해서 직접적인 확신.. 이게 지각이 아니라는거야.. 그 일차적 언어화.. 이게 지각이 아니야.. 이건 경험론적인 지각 개념인거라는 뜻이죠.. 지각이 기초라고 믿고 있는 감각이요.. 감각이 우리가 직접적으로 들어오니까 확실한 것 같잖아요? 먹으면 맛있다.. 이렇게? 아니라고.. 비싼 데서 먹으면 더 맛있다고.. 절대 아니라고 이거.. -똑같은데.. 똑같은 커피를.. -그렇죠.. 똑같은 커피를.. 비싼 옷이 더 좋아보인다고.. 아무리 똑같이 잘, 정교하게 만들어도.. 당연한겁니다.. 감각을 지배하는 언어의 구조에 의해서 얼마든지 감각도 지각도 바뀔 수 있어요.. -당연하지.. -당연하지... 그러니까 러셀이 못이해(?몰이해?)한거라니까? 다시 말해서 지각이 감각으로부터 오지 않을 수 있다는거지.. 지각이 감각으로부터 오지 않는다고.. 신기하게도.. 그렇죠? 감각, 지각, 오성, -이성, 관념.. -이라는 인식의 체계인데.. 이 감각, 바로 다음 이 지각이 감각으로부터 안 올 수도 있다고.. 이게 중요한거지.. 이게.. 인식의 가장 기초과정이 지각이에요.. 그렇게 알아두면 되죠.. 감각의 일차 언어화.. 그런데 그게 감각의 일차 언어화인데 감각으로부터 안 올 수 있다고.. 지각이.. 이게 핵심인거죠.. 러셀은 그걸 절대 이해를 못해.. 형이상학을 아예 이해를 못하니까.. 그러니까 하이데거를 다루지도 않아.. 지각이 감각으로부터 출현하지 않는다면 실체적 자아를 부정하지 않아도.. 지각을 지각대상과의 관계라고 충분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헤겔은 정신현상학 2장, 지각, 사물과 착각 편에 이렇게 씁니다.. 보편적이라는 원리는 우리에게 의식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의식적으로.. 앎으로.. 지각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방식은 감각적 확신에서와 같은 표면상의 수용이 아니라 필연성을 따른 수용방식이다.. 이야.. -그러니까 논리적인 방식이란 얘긴가? -논리적인 방식이기도 하거니와 체계로서의 방식.. 인식, 의식적인.. 체계의 방식.. 의식적이라는거야.. 지각이.. 감각적인 게 아니라.. 이해 갔죠? 요컨대 지각은 감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필연성의 존재 의식을 의식할 때.. 존재론을 의식할 때.. 삶의 의미를 깨달을 때.. 이때 출현한다.. 라는 거죠.. 존재의 보편성을 의식적으로 탐구한 뒤에나 지각이 의미를 갖는다.. 그러니까 감각적 확신의 표면상의 수용은 지각이 아니다.. 이건 경험론자들이 말하는 지각이다.. 로크가 말한.. 그러므로 존재하는 것은 지각하는 것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지각한다는거야.. 지각이 바로 감각 다음에(오?있?)는 1차적 인식과정이라고 그랬잖아요? 가장 직접적인 인식과정이에요.. 따라서 필연성을.. 존재의 필연성.. 존재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 이 가장 1차적인 게 가장 직접적인거야.. 가장 투명해..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은 지각하는거야.. 누구나 그것을 깨달을 수 있다는거지.. 이성적이고 관념적인 것은 엄청난 논리학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지각은 쉬워요.. 그렇죠? 그러면 존재하는 것은 지각하는 것이다.. 라는 것은.. 그 쉬운 훈련을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그렇게 열어놓은 거야.. 누가? 버클리가.. 뭘? 대중 앞에.. 이 속물을.. 속물성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이렇게 열어놓은 거라고..
자, 이런 측면에서 시대공명을 한번 읽어봅시다.. 재미있는 이야기일 거에요.. -네.. 자, 제가 오늘 가져온 시대공명은.. 이거 한 2년 전에 나온 다큐멘터리더라구요. 시리즈로.. 자본주의에 관련해서.. 한 4부작인가? 그정도 되는 것 같애요.. 시리즈로.. 자본주의의 비밀이라는 EBS에서 제작한 어떤 다큐멘터리구요.. 오늘은 그 중에서도 소비와 관련된 두 번째 2부의 내용입니다.. 저는 한 10분 쯤인가에 그 내용을 보면서 아 이거 한번 다루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까 의식과 무의식.. 인간은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소비한다.. 내가 보고.. 냄새 맡고.. 이게 내가 직접적으로.. 야.. 이거 내가 정말 합리적으로 나한테 필요해서 내 오감을 작동시켜서 감각을 작동해서 사는거야.. 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라는거지.. -아우.. 상투적인 해석인데? 다큐멘터리가.. 똥팔씨가 아니라(?) 다큐멘터리가 상투적인 해석인데요? -다큐멘터리가 그런 얘기를 한다는거지.. -그러니까 왜 소비를 하느냐에 대해 다루는거죠? 우리의 소비 중독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요.. 물욕에 대한 다큐멘터리.. 다르게 정의합시다.. 쇼핑은 일단 어렸을 때부터 시작되는 거에요.. 맞아요? 이게 신기하게도 다큐멘터리를 보니까.. -돌 지난 다음에.. -어, 바로 들어오는데.. 아이들이 수백 개의 브랜드 이름을 이미 알고 있대.. 배우지 않아도.. -돌 지났을 때.. -네.. 쇼핑이 강렬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공부를 잘 하기 위해서 무언가를 기억하려면 그건 강렬한 인상을 받으면 그건 안까먹고 기억할 수 있거든요.. 공부의 속도를 높이려면 그 집중력이라는 것은.. 인상.. 그러니까 내가 너무 하고 싶고.. 알고 싶고.. 그러면.. 잘 돼.. 그런데 하고 싶지 않고 억지로 해.. 왜? 기억은 인상이거든.. 인상들의 축적물(?).. 도장 인.. 빵! 안된다고.. 기억이 안나.. 그러니까 내가 자발적으로 결탁해야 되는 것이겠죠? 자발적으로 결탁해야 되는 것이에요.. 그런데 아이들은 수백 개의 브랜드 이름을 다 안대.. 안가르쳐줘도 다 알아.. 명품 브랜드 다 알아.. 구찌.. 다 알아.. 걔네들.. 알아.. 왜? 이게 별 노력 없이 취할 수 있기 때문인데.. 쇼핑할 때 애들이 어떤 판타지를 갖기 때문이겠죠? 이 판타지에 집중해야 돼요.. 존재론적으로.. -그렇지.. 그리고 또.. 특히.. 한.. 십대 됐을 때.. 내가 립스틱을.. 이걸 바르면은 누가 와서 나를 좋아해주지 않을까.. 막 이런 환상을 갖는다잖아..? -그러니까 그것은 명령인거에요.. 환상이 아니라.. 명령이야.. 연예인들이 바르고 나오잖아? 명령이라고.. 그건 명령에 복종하는 거야.. 내가 스스로 하는 것 같지? 내가 그래서 개성 살릴려고 하는 애들한테 늘 얘기하지만.. 너같이 머리 노랗게 하고.. 그거 개성있는 것 같지? 너? 그건 개성이 있으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노예야 임마.. 다 있어.. 엄청 많아.. 그런 애들.. 삐딱하게 살고 싶지? 안삐딱해.. 너.. 엄청 순응적인 애야.. 약하다는 뜻이야.. 오히려 강한 애들은 넥타이 딱! 구두 손질 쫘~악.. 할 줄은 아냐? 왜냐하면 안가르쳐줘.. 시대가 명령을 안하니까.. 그걸.. 누가 아침에 구두를 손질하라고 명령합니까? 어떤 미친놈이.. -크록스 신고 그냥 출근하라고 그러지.. -그렇죠.. 그리고 마초라고 아주 욕을 바가지로.. 처먹지.. 그렇죠? 안한다는거에요.. 왜냐? 이게 쇼핑을 할 때.. 아이들이 경험하는 것은 단지.. 뭔가를 갖는다? 기분을 좋게 한다? 이 측면이 아니야.. 그 정도 측면이면 이런 놀라운 집중력을 유지할 수 없어요.. 그래서 그냥 퉁쳐서 무의식이라고 해석하는건데 이건 뭐냐하면 아이들은 쇼핑할 때 카트에 담거나 봉지에 담거나.. 무.. 허.. 허에서 뭔가.. 유.. 채워지는 경험을 합니다.. 카트에 타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는거야.. 그래서.. 카트에 딱 타면 없잖아? 허.. 비어있지..? 그 허에서 채워지는 경험.. 이것도 우리 또 남자, 여자들.. 우리 마트에 가면.. 그 채워지는 경험 또 작살이지.. 그래서 가득 채워지면 그 포만감이.. 존재론적 포만감.. 왜냐하면 있으니까.. 있으니까.. 그만큼 있다는 것.. 확실성이.. 존재한다는 것의 확실성이 떨어지는 현대인들에게.. 이것 보다 좋은 게 없죠.. 그래서 미국에 지금 소비가 막 열린다잖아? 물가가 치솟는데.. 그냥 카트에 막.. 때려 잡는대.. -엄청 허하다는 얘기야? -그렇죠.. 일본은 뭐하냐? 저축한대.. 경제가 막 성장으로 살아나고 있는데.. 저축한대.. 완전히 반대에요.. 완전히 반대.. 미국은 너무 허한거야.. 계속 때려 넣어.. 계속.. 너무 허하기 때문에 콜라도 그렇게 많이 먹는 것이고.. 너무 허한거야.. 뭐가 허한거야? 그러면? 삶의 이유.. 존재.. 존재가 허하면 뚱뚱해 집니다.. 당연한 거야.. 그걸 채울려고 어때? 계속 있음, 있음, 있음을 찾죠.. 쇼핑이란건 그런거죠.. 허에서 있음이.. 이게 충격적인 경험입니다.. 이거.. 그래서 아이들을 마트에 안데려가는 게 최고 좋아.. 이건 충격적인.. 이건.. 버클리가 말하잖아요? 그.. 미각 있잖아요? 고통이라고.. 너무 짜면.. 고통이라고..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감각은.. 그렇게만 알고 있잖아요? 감각의 실체를 어떤 유희, 혹흔 쾌락.. 혹은 불쾌 이렇게만 알고 있는데.. 고통이라고.. 그런데 맞아요.. 맞는게 뭐냐하면.. 뇌에서 매운 맛 있죠? 엄청 매운맛.. 매운맛은 맵다라고 인식하지 않고 고통스럽다고 인식합니다.. 한대 두들겨 맞는 것하고 똑같애.. 매운 것은.. 그리고 그렇게 매운 것에 중독되면.. 고통이 들어오니까 뇌에 뭐해? 반작용으로.. 도파민을 뽕박(?때려붓는)시키는 거야.. 그러면은 어때?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죠? 그래서 사람이 매운 것에 중독된 것은 매에 중독된 것이랑 똑같은 거에요.. 똑같은 거라고.. 그래서 우리 어렸을 때 빠따로 맞고 오면 선생님 딱 선생님한테 욕하면서 정신승리 했잖아? 아.. 오늘은 안아프게 맞았어.. -맞아.. -내가 엉덩이 좌우로 움직일 때.. 막 순발력 막.. 이런 얘기 하잖아요? 그렇죠? 막 속도 계산하고.. 그렇죠? 뉴턴(?)을 활용하고.. 막.. 이런 장난도 하고.. 중학교 때.. 그랬는데.. 아무튼 그런 거에요.. 무.. 허에서 무에서 채워지는 느낌.. 맵고, 달고, 짜고 자극적인 것도 맛있어..가 아니라 고통으로 인식한다니까? 그래서 들어오면 어떻게 돼? 고통을 해결해야 되니까.. 뇌는.. 그렇죠? 그러니까 쾌락의 호르몬들을 막 분비하는 거에요.. 그 쾌락의 호르몬들이 계속 분비되면 어때요? 집중력은? 조금씩 조금씩 더 나빠지죠.. 뇌는 조금씩 조금씩 더 고장납니다.. 존재를 아는 능력은 조금씩 조금씩 더 고장나고 공부할 수 있는 의욕도 조금씩 조금씩 고장나.. 당연한거죠.. 집중이 안돼.. 글자를 못읽어.. 이렇게 되는거야..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자본주의사회에서 극복이 되는가? 이 쇼핑에 대한 중독..? 불가능하죠..? 불가능해.. 왜냐하면 불가능하다고 전제를 내린 사회야.. 자본주의 사회가.. 관리할 수 있을 뿐이죠.. 극복하려면 니체의 말따나.. 아무도 근접할 수 없는 저 매나 살 것 같은 저 시골 위에.. 거기 절벽 위에서 살아야 돼요.. -자급자족 하면서? -네.. 그건 나도 못하는거야.. 그거.. 그런데 다큐에서 보면 절충안이 나옵니다.. 절충안.. 나는 이 절충안이 참 가소로운데요.. 절충안이 뭐냐하면.. 노벨 경제학상.. 꼭 이런 애들 꼭 나와.. 수상한 폴 새뮤얼슨의 이론을 따랐다고 하면서 행복지수란.. 아주 편하게 행복은 소비/욕망다.. 욕망 분에 소비다.. 아주 심플해.. 그래서 욕망을 낮추면.. -소비가.. 커지지.. -어.. 커지고 행복이.. 소비를 높이면? 커진다.. 그런데.. 다만 무한소비는 불가능하다.. 그러니 욕망을 낮춰라? 왜 불가능하냐? 돈도 시간도 유한하잖아? 여기 답 나오네.. 그러면 욕망을 낮춰라? 욕망을 잠궈라? -물 한모금이면 충분하다? -그러니까 금욕하라..라고 읽으면.. 이것도 완전 상투적인 해석이죠.. -그런데 그걸 자본주의 사회가 바랄까? -자본주의 사회는요.. 물질 소비 빼고는 전부 금욕이에요.. 자본주의 사회는 성스러운 금욕주의 입니다.. 사랑하지도 않아.. 연애도 안해.. 요즘엔.. 연애도 안한다고.. 전부 금욕이라니까? 좋은 숫자 빼고는 전부 금욕적이에요? 엄청 금욕적이야.. 담배도 안하지.. 술도 못막어질까봐 잘 안하지? 자기관리한다고 직장 열심히 다녀야되고 나 잘릴지도 모르니까 운동까지 하지.. 전부 금욕주의입니다.. 과한게 없어요.. 요즘에 그래서 지젝이 얘기하잖아? 요즘에 가장 레지스탕스는 누구야? 흡연자라고.. 레지스탕스야.. 왜? 자기를 스스로 망가트리면서라도..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킬려고 하는거 아냐? 웃긴거죠.. 웃긴거잖아.. 엄청 금욕적이라니까요? 장난 아니게 금욕적입니다.. 잘 참아.. 다만 돈에 있어서는 물질, 숫자에 있어서는 안그렇죠.. 아주 집요하죠.. 골때리죠.. 자본주의 체제가 그런 겁니다.. 내가 선택했다는 것은 대부분 조종당한거에요.. 다큐멘터리에 나오잖아.. 그래서 쇼핑 루트도 조종되고.. 씨씨티비에 쭉 나와.. 그 사람 관찰해가지고 A형 B형.. 계속 분류되고 있죠? 우리는.. 분류하고 있어요.. 빅테이터가.. 저렇게 생긴 뒷모습.. 저 정도 키.. 저런걸 입은 아줌마, 아저씨.. 두 명이 왔냐? 쇼핑을 셋이 마트에 왔냐.. 그 사람들에 따라서 이 채워지는 이 매출액이 달라지니까.. 그 사람에게 최적화된.. 종류를 계속 바꾸죠.. 이렇게.. 하나라도 더 늘게.. -진열 상품도 바꾸고.. 그때그때.. 때맞춰서.. 하나라도 더 넣게.. 2+1.. 항상.. 하나라도 더 넣게.. 이 공허를 채워야 되니까.. 존재론을 스스로 문자를 사냥해서 채워야 되는데.. 안되니까.. 그러니까 언린애랑 똑같은 거에요.. 어린애도.. 카트에 타면서 막.. 들어오면 기분 좋아가지고.. 뭐가 들어오는지도 모르는데 기분이 좋아.. 간장이 들어오는데 왜 웃냐? 그러면서 좋은거야.. 왜? 채워지니까.. 존재의 의미라는 게 그런.. 채워짐이거든요.. 안타깝게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어야 돼.. 그러니까 문자를 사냥하지 않으면 어렵다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절충안을 내놓는다고 했잖아? 그게 더 조금 가소롭다고 얘기했는데.. 절충안이 뭐냐하면 체험소비가 물질소비보다 행복감이 오래 간대.. 행복감이.. 이게 무슨 뜻이야?여행 가라는 뜻이죠.. 여행 가라는.. 한국 사람들은 이 말에 진짜 순종합니다.. 정말 여행 많이 가.. 그런데 여행 또한 진통제죠.. 지적인 여행은 왜 안갑니까? 그래서 제가 강의할 때 아름다운 삶을 위한 철학 여행이라는 타이틀을.. 썼는데.. 그랬더니 바로 무슨 모임이 만들어지는줄 알아? 같이 이탈리아 갈려고 하는 나를 끌고 내가 가이드야? 씨발.. 갈려고 하는 여행을 만들려고 해. 안가도 된다.. 거기를.. 안가도.. 중요한 건 가고 안가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르네상스라는 감수성을.. 그 존재론을.. 그 무한과 접속할려는 실질적인 노력을.. 그 노동력을 우리의 몸에 붙여서 생활을 변화시키는 거라는 건데.. -지각은 감각으로부터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꼭 이탈리아 안가도 지각할 수 있다.. -그렇죠.. 더 잘 아는거죠.. 서울에 산다고 서울 잘 압니까? 서울을 관찰하고 서울을 읽은 사람이 훨씬 잘 알지? 그런데 그걸 굳이 갈려고.. 기분전환 할려고 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물욕에서 해탈할려고 하면 금욕 안돼.. 계속 튀어 나와.. 계속 소비해야 돼.. 이거.. 더 폭발적으로.. 반동소비로 크게 하죠.. 우리 봤잖아? 뭐 끝난 다음에? 코로나 끝난 다음에.. 일본을 씨.. 와.. 엄청나게 많이 가요.. 지금.. 각 공항이 일본 가는 비행기로 미어 텨졌어.. 지금 현재.. 주말엔 탈 수가 없어.. 장난 아니아 진짜.. 비행기가 막 퍼져.. 하도 왔다갔다 해서.. 여행.. 진짜 실제에요.. 이거.. 퍼져.. 자, 물욕을 해탈할려면 금욕이 아닙니다.. 생산 활동에 뛰어들어아죠.. 생산활동에.. 소비는 반응적 행위니까요.. 그러니까 쉬운거죠.. 버클리는 반응적인 것을 감각적인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반응적인 것을 감각적인 것이라고.. -반면에 반응은 지각을 초월하죠.. 반응을 이기죠.. 감각에 언어를 입은 첫번째 인지활동이 지각이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지각은 직접적인 것이죠.. 하지만 반응적인 감각을 통제하는 힘을 갖고 있죠.. 반성적이니까.. 그렇죠? 언어적이라는 것은 반성적이니까.. 반응적인 것을 통제하는 힘을 갖고 있어요.. 그러니까 지각의 힘만 활용해도 감각의 노예로부터 약간은 탈주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지각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죠? 예를 들면 일기를 쓰는 것도 지각이고.. 그렇죠? 다이어리를 정리하는 것도 지각이죠.. 맞죠? 오늘의 하루 느낌을 한문장으로 압축하는 것도 지각이고.. 그러니까 어설프지만 표현활동을 하는 것도 지각인 것이죠.. 그러니까 이게 지각만 해도 감각적 노예로부터 탈출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쇼핑에서 자유로울려면 생산활동에 참여하라.. 이게 핵심인거에요.. 그렇죠? 똥팔씨 대통령글(?) 언제 쓸거야? 내가 그걸 몇년 전부터.. 대통령제.. 윤석열 당선되기 전부터.. 쉬우니까.. 하라고 했는데.. 그게 안된다는 거야.. 안그러면 어려워요.. 뭐가 어려워? 감각에서 벗어나기가.. 그 반응.. 반응하는 인간에서 벗어나기가 참 어려운거라.. 인격이 안바뀌는 이유기도 하지요.. 생산활동을 해야 돼요.. 생산 활동.. 한 문장이라도 써봐야 된다고.. 지각.. 한 문장이라도 말해보고.. 해야 되는거죠.. 하일라스와 필로누스와 나눈 세편의 대화에서 버클리의 말을 들어봅니다.. 두 번째 대화 속 이야기인데요.. 내가 주장하는 것은 신의 지적 실재 속에서 사물을 대표하는 것을 지각하므로써 내가 그것을 본다는 것이 아니네.. 내가 주장하는 것은 나에게 지각되는 사물은 무한한 영적 존재에 오성에 의해 인식되고 그 의지에 의해 산출된다는 것이네.. 여기서 핵심은 의지입니다.. 의지.. 신성은 생산하는 적극적 의지에서 산출되는 역능이야.. 그러니까 존재 의미는 그런거라고.. 반응하면 안돼.. 소비하면.. 생산해야돼.. 자극해야 하고.. 생산하고 자극할 때 일어나는 역능이 신성을 만들고 왜 사는지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구요.. 그래서 예술가들이 그렇게 놀라운 존재론을 갖고 있는 거에요.. 뭘 몰라도.. 이를 산출하기 위해서 숨을 쉬는 감각에 습합시킬려고 하는 것이 지각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존재하는 것은 지각하는 것이죠.. 그렇죠? 여기서 메를로 퐁티가 나오는거죠.. 몸의 현상학.. 이겁니다.. 직접적인 지각의 현상학.. 여기서 나오는 거에요.. 유심론이에요.. 퐁티도.. 유심론이죠.. 그러니까 존재의 의미를 생산하는 존재론적인 사유가 없으면 감각을 어떻게 통제하기는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그 삶의 목표가 행복이라고 그러잖아요? 사실 행복이 아니죠? 이거.. 말초적 쾌락의 증대지.. 삶의 목표가.. 노예에요.. 노예.. 삶의 목표가 어떻게 행복.. 말초적 쾌락의 증대입니까? 그러면 자본가.. 돈 있는 놈이 가장 행복해야지..? 그다음에 또 행복한 사람 누구야? 금욕주의자가 가장 행복해야지.. 그래서 늘 소개되는건.. 자본가 아니면 금욕주의자.. 둘 중에 하나야.. 둘 다 틀렸는데.. 그렇죠? 생산하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쾌활하게 생산하는 사람들이 존재론이 으뜸인 사례가 없어요.. 그건 반자본주의적이기 때문에.. -다루질 않어? -네.. 달라이라마는 자본주의적이에요.. -그래서 나는 자연인이다가 방송되거나.. -그래서 그런식이에요.. 반동적인 것.. 그렇죠? 나는 예술인이다.. 뭐 이런거 안한다고.. 잠깐 했다가 말어.. 시청률이 안나오니까.. 사람들이 벌써 아는거지.. 그것도 순종하는거죠.. 달라이라마는 자본주의적이라고 그랬어요.. 신기하게도.. 달라이라마가 어떻게 자본주의적이에요? -자본주의적입니다.. 왜? 체계적이지 않으니까.. 모든 체계적인건 체계적인 자본주의와 싸울 수 없어요.. 체계적인 자본주의와 싸울려면 엄청 체계주의적이어야 돼요.. 그냥 말 하나.. 은유로 퉁치면 안돼.. 그거.. 그건 무지의 소치.. 도움이 된 적이 없소.. 바이틀링.. 무지가.. 역사에 도움이 된 적이 없소.. 바이틀링.. 얘기하잖아요? 맑스가 말하고 싶은 게 그거에요.. 자본주의는 엄청 체계적인데.. 과학적인데.. 존재론이 씨.. 비체계적이다? 한 마디 하고 퉁치고.. 은유적이다? 시적이다? 이거 아니에요.. 감당 못합니다.. 그래서 공생하게 되는 것이죠.. 버클리는 이런 말을 했는데요.. 우리는 신 안에서 숨쉬고 움직이며 살아간다.. 여기서 신이라는 게 무한을 뜻하는 거에요.. 그들은 무한이라는 경지가 확실했지만, 우리는 지금 무한이라는 경지가 없어졌으니까 신이라는 경지가.. 그러니까 우리가 무한으로 뭔가를 만들어내야 되는 것이겠지요.. 존재의 목표는 무한과 어떻게든 교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쉬었다가 그 교유 방법에 대해서 조금더 구체화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무한과의 교류에서 생산에 참여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반응적 감각이 아니라 생산적 지각으로 존재의 위상을 높일 수 있다.. 이게 버클리의 주장이자 제가 해석하는 주장입니다.. 뉴턴과 로크는 그 경지를 보지 못했죠.. 뉴턴과 로크는 모두 유혹당했죠.. 물욕에.. 그래서 망가졌지.. -말년에.. -어.. 둘다 말년이 별로 안좋죠.. 그래서.. 빛을 사물처럼 대했기 때문에.. 빛. 무한이 출현하는 저 빛을 사물처럼 대했기 때문에.. 무한의 놀라운 생산활동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괴테가 아주 유명한 말을 남기면서 뉴턴을 지적했죠.. 뉴턴의 실수는 눈의 감각보다 수학을 더 신뢰한 것이었다.. 이겁니다.. 이게 그런 오성을 더 신뢰하고 이론을 숫자를 더 신뢰하다보면 무한의 존재론은 망각되는 것은 당연한겁니다.. 존재망각의 역사는 바로 그.. 숫자와의 역사와 같은 거에요.. 존재 망각의 역사는.. 버클리의 유명한 말도 보태봅니다.. 천상의 모든 천사와 지상의 모든 구성물.. 요컨대 세계의 뼈대를 이루는 모든 물체는 정신이 없으면 존립할 수 없다.. 정신이 없으면 존립할 수 없다.. 물론 버클리도 영국적 경향입니다. 조심해서 읽어야 돼요.. -아일랜드 아니야? 그래도 영국적 경향을 묻히고 있다? -성공회에요.. 성공회.. 로크처럼 경험이 지식의 주된 원천이라고 보죠.. 이건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이기도 하죠.. 맞습니다.. 그래서 영국은 아리스토텔레스를 그렇게 좋아합니다.. 러셀도 엄청 좋아하죠.. 서양철학사 읽어보면 아리스토텔레스를 칭송하는 표현이 장난이 아니지.. 그런데 이는 기하학적이고 논리학적인.. 그 대륙 합리론과 대조되죠.. 이런 측면에서 버클리를 억지로 경험론자로 끼어넣는 거에요.. 경험을 중요하다고 생각했잖아? 이렇게.. 지각은 경험에서 오는건 아니더라도.. 지각은 경험적이잖아? 이런 식으로.. 말도 안되는거죠.. 그런데 버클리와 로크가 같은 과정을 아무리.. 경험이 중요하다고.. 공유했지만 직접성이 중요한거죠.. 프레젠트.. 그 현재성.. 이게 중요한거야.. 버클리에게.. 로크도 중요하죠.. 하지만 둘은 완전히 다른 결론입니다.. 왜냐하면 합리론이 잘못되면 어떻게 되냐? 합리론이 잘못되면 뭐가 되는 것 같아요? 똥팔씨? 합리론? 합리론은 기하학적이고 논리학적으로서 따져묻는거라고 했잖아요? 잘못 오도되면 실증주의가 되는거야.. 실증주의.. 그렇죠? 그리고 경험론이 잘못.. 경험론이 그냥 잘못 오도될 게 없지? 속물이니까? 그 실증주의가 국부랑 만나면 제국주의가 옵니다.. 그리스.. 아테네도 마찬가지죠? 그리고 유럽도 실증주의가 대두되면서 제국주의가 왔지.. 그렇지? 그다음에 실증주의가 영국을 말아먹으면서 영국이 대영제국이라는.. 무슨 대영이냐.. 씨발.. 이상한.. 아주 폭력적인.. 아주 폭력적이고 아주 배타적인 세계화를 이뤘죠.. 그것을 이제.. 바톤을 이제 미국이 이어받은 것이고.. 아주 배타적이고.. 아주 멍청하죠.. 그래서 영국과 미국은 안배우는 게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이 EBS 다큐에서 나오는.. 자본주의 관련해서.. 시리즈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외국인들이라면 미국 아니면 영국이야.. -그러니까 안봐도 되지.. 사실은.. 주제만 보면 되고. .안봐도 됩니다.. 그리고 조금 비평적으로 읽고싶다고 그러면 프랑스를 접하잖아요? 그래도 프랑스를 접해도 끝까지 읽을 수는 없죠.. 독일 이탈리아는 가야.. 국가가 아니라 그 지역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가야 이제.. 존재론적으로 읽을 수 있으니까.. 그건 좀 다른 문제 같아요.. 구체적으로 한번 살펴봅시다.. 버클리가 로크를 비판하는건 로크가 온건하다.. 라고 비판합니다.. 로크는 인간오성론 5권에 인식을 이렇게 규정하거든요? 나는 인식을 우리의 관념 중 임의의 관념 사이의 연관.. 일치.. 혹은 불일치.. 충돌의 지각과 다른 그 무엇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러니까 인식이 뭐냐? 그냥 우연적인 충돌.. 우연적인 어떤 지각, 형태.. 경험이 만들어낸 충돌, 그다음에 분산.. 해체.. 다시 구축.. 이런 과정이라는거지.. 그러니까 인식은 경험의 비서라는 뜻이죠.. 경험의 비서.. 버클리가 보기엔 이건 너무 온건합니다.. 왜냐하면 인식을 유용성의 관점으로 보는 거거든.. 이 태도가.. 근본적으로 경험론은 인식을 유용성의 관점에서 보는 거에요.. 그래서 버클리는 인식의 기초가 경험이지만.. 임의적이고 충돌적인 상식.. 기계적이고 사물적인 오성, 지성 이따위가 아니라.. 현실적이고 직접적이지만 무한과 직통하는.. 삶의 과정이다.. 존재의 과정이다.. 이렇게 정의하는거죠.. 관념론의 완벽한 예고편이죠.. 이게.. 이것이 그 유명한 에쎄 에스트 페르키피Esse est Percipi.. 존재하는 것은 지각하는 것이다.. 의 의미입니다.. 존재론적 의미인거죠.. 이게 라틴어로 만들어낸 말들은 대부분 존재론적 의미인거죠.. 코기토 에르고 섬..도 존재론적 의미로 읽어야 되는건데.. 그런데 뒤에 수입된 학자들은 그것을 실증주의적으로 자꾸만 쓸려고 하죠.. 유용하니까.. 그렇죠? 얼마나 데카르트의 좌표평면이 얼마나 유용합니까? 그게.. 데카르트는 자기의 기하학을 별로 얘기도 안하고 우리나라도 번역도 안돼있는데.. 데카르트 하면 떠오르는 게.. 그거잖아? 파리..똥파리 이야기.. 그렇죠? 좌표 평면에 있는 똥파리 이야기 아냐? 정확하게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사실 데카르트한테 중요한건 그게 아니죠? 그게 아니죠.. 이렇게도 연장적 실체를 증명할 수 있다는 뜻이지.. 이게 연장적 실체는 아니다.. 뭐 이런 뜻이거든요? 신기하죠.. 그러니까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의 의미가 어느 정도까지 급진적으로 나가냐.. 이것을 설명을 해야되는데.. 예를 들어 봅시다.. 물컵에 빨대를 딱 담갔어요.. 휘어지죠? 빛의 굴절 때문에 휘어진다고 우리는 알고 있죠? 휘어진 빨대는 그러면 가짜입니까? 진짜입니까? 그 이미지로 ㅇㅇㅇㅇ(?).. -그건 가짜지.. -가짜죠..? -착시지 착시.. -어.. 착시라고 우리는 알고 있죠.. 그런데 버클리는 착시는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것도 진짜라고 그래요.. 그 빨대도 진짜이고 저 빨대도 진짜다.. 사물은 항상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 출현한다.. 이거 뭔 개소리야? 그러니까 빨대는 진짜 굽어있다는 거에요.. 우리는 그런데 빨대가 무슨 진짜 굽어 있어? 만지면 안굽어있는데? -빼면은 그대로인데.. -보는건 있지만 만지면 안굽어 있잖아? 말이 돼? 이런 뜻이겠죠? 버클리가 표적으로 삼은 것은 사실.. 로크의 과학자 보일이 데카르트적 세계관을 실증주의로 만들려고 애를 썼거든요.. 세계는 무한한 미립자.. 원자.. 미립자의 집합인데.. 그 미립자가 상호작용 하면서 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버클리는 반대로 얘기합니다.. 그게 아니라 세계는 우리가 이해하는대로 나타난다.. 두 가지 관점에서 보일을 비판합니다.. 첫 번째는.. 세계에 존재하는 유일한 원인은.. 그 인과율이 아니라 의지의 발동이다.. 이 말은 뭐냐하면.. 보고자 하면 보인다.. -그렇지.. 내가 보고싶은대로.. -어.. 보고싶은대로.. 그런데 맞는거다.. 맞죠? 우리는 어린 아이들을 보면 휘어져있는 것을 몰라요.. 그런데 빛의 굴절을 배우면 알아요.. 그러면서 이게 가짜라고 해요.. 그렇죠? 어떤 필터를 통해서 가짜라고 하는거죠.. 그러고 만지면 일자로 느껴지는데 만져보세요.. 휘어지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우리가 그걸 알기 때문에 직선으로 느껴지는 것이지.. 실제로 해보세요.. 내가 모르면 휘어져서 느껴져요.. 왜냐하면 그걸 느껴지는 촉각은 시각에서 거의 대부분 오거든.. 정보가.. -맞죠.. -그러니까 보고자 하면 보인다.. 라는거죠.. 보이는 대로 보이는 게 아니라.. 보고자 해서 보이는거다.. 두 번째.. 인간의 실재로 이해하는 대상은 순전히 정신적이다.. 세계는 정신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면 그 이미지 있죠? 곧은 빨대의 이미지와.. 그 물에 담궈서 굽어진 이미지 둘 다 이미지잖아요? 표상이죠? 지각되죠? 그러면 그 지각되는 게 실체이고 진짜면.. 이것도 진짜인거지.. 다만 그걸 느낄 때 우리가 착각할 수 있는거야.. 느끼는걸 착각하는거지.. 정신을 착각하는 게 아니라..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생각한다고.. 느끼는 것은 착각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정신을 착각한다고 생각한다고.. -정신에 오류가 있다고 생각하는거지.. -어.. 이거 웃기는 거에요.. 왜냐하면 감각은 일관적이에요? 비일관적이에요? -비일관적이지.. -오늘 잘생겨보이는 똥팔씨가 내일 못생겨 보일 수 있잖아? 그런데 우리는 그 감각을 너무 확실한 잣대로 삼는다는거지.. 웃긴 거에요.. 이거.. 이건 철학이 처음 출현하면서 시작된거라고 했어요.. 감각적 확신을 믿지 말라.. 이게 처음 출현하면서.. 그런데 아직도 그지랄을 하고 있다는 거에요.. 영국애들 보면.. 보일은 너 그지랄할려고 그거 이론 만든거지? 라는 거죠.. 정신적으로 확고하면 진짜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게 핵심입니다.. 이걸 우리는 뭐라고 해? 주의주의.. 라고 부르죠.. 둔스스코투스.. 이게 비슷한 말이죠.. 존재론은 늘 그걸 강조하니까요.. 그러니까 정신적 확실함의 토대가 직접성과 투명성.. 존재의 직접성과 존재의 투명성을 만든다.. 존재의 확실성의 토대가 없으면 존재의 직접성과 존재의 투명성은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누가 대신 말해줘야 되고.. 그렇죠? 누가 대신 밝혀줘야 되는.. 그러면 지각이 문제가 돼.. 지각은 현존재.. 너, 너, 너, 나.. 이런 현존재가 느끼는 가장 태초적인 과정이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이건 되게 주관적인거죠.. 맞죠? 그 자기가 판단 못하는 지경까지 간다는거야.. 존재가 투명하지 않으니까 자꾸 뭘 물어봐. 해도 돼요? 이렇게 물어봐.. 아이들이 있다.. 존재는 있다 에요.. 있다가 확실하지 않으니까 부모님한테 선생님한테 기대면서 물어보죠.. 이거 맞아요? 이렇게.. 맞죠? 그러면 그게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게 아니라.. 기대는 거란 말이야.. 그렇지? 존재의 기울기.. 기울임이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어른이 돼서도 그렇게 묻는다는 것은 내가 지금 기울어져 있다는 것이지.. 정신이.. 곧지 않고.. 확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내가 지각하는 모든 사물들도 이렇게 곧아서.. 이건 맞나? 이런 식으로 되는거죠.. 그러니까 정신적 확실함의 토대가 세워져야 그때부터 감각이 들어오는 저 불투명, 혼란스러움.. 이것의 허위를 인식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무한의 투명성을 만들려면.. 정신은 확실해야 되죠.. 그러니까 경험론자는 이렇게 반복합니다.. 경험론자들은.. 내가 방을 떠나 있으면은.. 그러면.. 내가 지각하는 게 진짜라니까.. 내가 방을 떠나 있으면 여기 있는 이 컴퓨터.. 이 텀블러, 물.. 이런 것은 없어지는거냐? 러셀류는 항상 이렇게 질문하죠.. 버클리는 이렇게 답합니다.. 내가 방에 없을 때도 그것들은 여전히 신에게 지각되고 있으므로 -늘 있다? -지각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렇죠.. 이건 내가 안 봐서 없는 게 아니라.. 신이 보고 있다는거야.. 누군가가 늘 보고 있다.. 신성은 늘 보고 있다는 뜻이죠.. 그리고 보고 있는 것이 정신적인 것인 이유는 신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형상이기 때문에.. 그렇죠..? 그러니까 버클리가 생각하는 신은..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창조자로서의 신만이 아니라.. 우리가 계속 보도록 지각 활동을 계속 압박해 주고 끊임없이 유발해주는 원인인거야.. 그 원인이 신.. 신성인거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제대로 살게끔 계속 우리를 압박해주는 그 원인.. 이게 신성이야.. 그게 숫자라면 우리는 주식을 해야 돼.. 그렇죠? 우리는 똑같이 움직이는 거에요.. 그게 승진이라면 우리는 존재의 시간을 거기에 때려 부어야 돼.. 맞지? 그게 인정투쟁이면 인스타.. 씨발.. 그렇게 하는 거에요.. 맞죠? 그게 어디있냐..?가 중요한거야.. 그게.. -그게 의지냐.. -그게 내가 존재의 확실성을 통해서(?토대로해서?) 제대로 살고 싶다라는 것은 특별하게 살고 싶다..라던가.. 고유하게 살고싶다..라던가.. 아니면 맑고 투명하게 살고 싶다..라던가.. 거기에 성실성을 투여할 수 있다는거죠.. 어떻게 살고 싶은가..의 문제가 진짜를 규정하는 거에요.. 무엇을 할 것인가를 규정한다고.. 그러니까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변화시키지 않고.. 나의 꿈과 의지.. 이런 문제를 차순으로 두고.. 그다음에 뭔가 방법을 바꿔서 뭔가를 얻겠다? 이건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다 허위와 가짜들의 집합인거에요.. 저는 이게 존재론을 깨달으면.. 내 선택에 되게 과격해진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제가 직장을 그만둔 이유가 그거에요.. 과격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 제대로 살려고 하는데.. 이게 방해물이 있잖아.. 이거 방해물을 제거해야 될거아냐? 안그러면 제대로 살.. 그러니까 존재론이 확실하면..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가 확실하면.. 인생의 루트는 아주 심플해지면서 확실해져요.. 이게.. 그런데 이게 제대로 살겠다는 내 이해가 불확실해지면.. 이게 꼬여.. 꼬이면서 이해관계를 만들어요.. 꼬이면서 이해관계를 만들면 그 이해관계에 종속돼서.. 더 이상의 모험이나 개선이 안되는 상태까지 가게 되죠.. 그러면 끝나는거야.. 안타깝게도.. 그러면 안 산거랑 똑같은 존재가 된다.. 또 하나 이런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습니다.. 어째서 우리는 사물을 부정확하게 인식하기도 하는가? 이것도 버클리는 아주 심플하게 답변하죠? 지각은 절대 틀리지 않습니다.. 판단하는 과정에 실수를 저지를 수는 있습니다.. 이게.. 하일라스와 필로누스의 세 편의 대화..의 핵심 주제에요.. 판단하는 과정에 실수를.. 판단하는 과정에 실수를 저지른다는 것은 내가 훈련이 안됐다는거지.. 그러니까 물에 젓가락이 반쯤 굽어보이는 것에 대해서 이게 우리가 착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게 착각이기 때문에 착각이 아니라.. 내가 착각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착각이라는거야.. 착각으로 판단.. 내 판단의 오류라는거지.. 그리고 더 중요한 판단의 오류는 뭐냐하면 그게 왜 중요한지를 질문하지 않는거야.. 그게 왜 중요한지를.. 거봐 내 말이 맞잖아? 휘어진거잖아? 너 느껴봐.. 너도 느껴봐.. 일로와봐.. 그러면 또 사람들 불러.. 너도 휘어진 것 같지? x 2 그러면서 공조를 원하죠? 이렇게.. 그런데 정작 중요한 질문이 빠져버리죠..? 그렇게 하면? 사실을 따지다 보면.. 그렇죠? 우리가 사실 관계, 사실관계.. 하는데 사실을 따지다보면 정작 중요한 문제가 사라져.. 정작 중요한 문제가 뭐야? 이게 왜 질문해야 될 거린가? 라는거야.. 휘어져 보일 수도 있고.. 휘어지게 느낄 수도 있고.. 주관성이니까 어떻게 증명해? 그걸? 다 있는데.. 왜 여기서 우리가 이것을 따지면서 싸워야 하는가? 이런거거든요? 사실 관계를 따지면 꼭 그런거야.. 사소한 사실관계 따지다가 원본을 놓쳐버리는거죠.. 그래서 내가 댓글로 뭔가를 물어보면 대답을 안하는 이유가 그거에요.. 그거 사실관계 따지다가 정말 중요한 본론.. 대전제가 무너져버리는거지.. 버클리가 대답하는 것도 그거에요.. 야 그게 왜 중요한 문제인데? 진짜 중요한 현자는 니체의 말따나 쓸데없는 질문 하지 않습니다.. 쓸데없는.. 그거 막 따지고 싶은거야.. 그거.. 왜? 나머지는 못이기겠으니까.. 그거 따지고 싶은거라고.. 실수.. 정작 중요한 대전제는 자꾸 허물어뜨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왜 살아야 되고.. 어떻게 살아야 되는 그 존재론적인 문제인거죠.. 다만 이 버클리의 존재의식에서 빠진 게 하나 있습니다.. 이걸 보완한 게 칸트고 헤겔이고 그런데.. 뭐냐하면 지각이 정신의 일번이면, 이거 유아론에 빠질 수 있어요.. 왜냐하면 증명 불가능한 증거.. 특히나 신성이 살아있을 때는.. 신의 의지대로.. 신에 가깝고 그런 실천 덕목 있죠? 삶의 실천윤리.. 신성이 살아 있는.. 깨끗한.. 정직하고 성실한.. -그러니까 신성마저 지워져버리면.. 그거 보루.. 마지막 보루인 신성마저 지워지면 상대주의다..? -그렇지.. 상대주의가 아니라 유아론.. -그러니까 유아론이 거의 내가 유일하다..라는 것이고.. 그게 상대론으로 또 되겠지.. 너도 유일해? 나도 유일한데.. -상대주의는 절대주의의 반댓말이니까.. 유아론은 일단은 애기니까.. 유아론은 자기 세계에 갇힌 거니까.. 약간 다르죠.. 그러니까 상대주의는 그래도 관계를 인정 하는거잖아? 그런데 유아론은 관계 자체를 인정 안하는거지. 자폐야.. 자폐.. 이게 신경증에서는 프로이트는 뭐라고 하죠? 유아론적 신경증.. 대표적으로 분열증적 신경증이 있고.. 유아론적 신경증이 있죠.. 자폐.. 그걸 뭐라고 해? 자폐를? 노이로제라고 하죠.. 노이로제.. 그렇죠? 분열증적 신경증은 뭐야? 히스테리.. 그러니까 노이로제에 빠질 수 있다는거지..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는 고집.. 여기에 빠질 수 있다. 당연한거에요.. 이거.. 신성이 무너지면 그럴 수 있죠.. 내가 신과 대화하면서 신에게 요구하면은.. 신이 알아서 대답해줄거니까.. 그러면 유아론에 빠질 가능성이 적죠.. 그런데 누구나 믿는 신이 없어..? 다 죽었어.. 신이.. 다 죽여버렸어..? 그러면 어떻게 돼? -나밖에 없지.. -어.. 그러면 완전히 독단.. 유아. 유치한 독단에 빠지는 거지. 유아론으로.. 항상 묻죠.. 쟤는 왜 저러냐? 이런 말을 듣게 됩니다.. 이런 말을 듣게 돼요.. 존재론에 관심이 있으면 첫 번째 이런 말을 듣게 돼요.. 저도 많이 들었어요.. 나는 상처 안받습니다.. 그런 걸로.. 오히려 좋죠.. 레지스탕스 된 느낌이라.. 그러니까 줍니다.. 쟤는 왜 저러냐? 이런 말.. 당연한거에요.. 쟤는 뭘 그렇게 생각해? 이런게 당연한거야.. 제대로 판단하면 당연하게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요.. 그렇죠? 그러니까 체제가 이상하면 오염됐는데.. 내가 깨끗하면 오염된것이 이상한 게 아니라 깨끗한 게 이상한 게 되니까.. 당연히 그런거죠.. 그러면 그때 자부심을 가지라고.. 그런데 그게 자부심에서 끝나면 유치해질 수 있다.. 유치뽕따 된다.. 실제로..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칸트는 여기에 대안을 하나 만들어내죠.. 뭐냐하면..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이지만 이 현상에 선험적인 잣대.. 규정의 잣대.. 선험적인 규정의 잣대.. 10가지 명령어.. 이게 정확하게 재판(?제판?)돼서 다듬어져서 수립될 수 있다면.. 그러면 신성이 붕괴돼도 유아론으로 빠지지 않을 수 있다.. 뭐 맞는 말이죠? 맞죠? 이게 대단히 중요한 문제죠? -어떻게 객관적 지표를 만든다는 건가? -객관적 지표.. ? 보편적.. 객관이라는 말은 약간 실증주의가 가지고 간 말이니까.. 숫자를 벗어난 객관은 없잖아요? 그러니까 보편적 잣대. 그러니까 현존재는 분명 나밖에 없지만.. 맞죠? 현존재만을 의식하면 유치해지잖아요? 따라서 존재의 확실성을 보증할 탐구가 있어야 되는데.. 그 탐구는 선험적인 규정의 잣대.. 그러니까 역사성 규정으로도 좋고.. 공간적 규정으로도 좋으나..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그래서 칸트가 비유한 게 뭐야? 삼각형 내각의 합은 180도다.. 이거 안변할 것 같잖아? 그런데 변하잖아? 곡률로 하면.. 이런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그 비유인데.. 잣대를 세울 수만 있다면.. 신성이 무너진 세계에서도 유아론에 빠지진 않고 물질주의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죠.. 칸트가 얘기한 것.. 그것을 자유라고 부르자.. 그것을.. 자유라고 부르자.. 자유는 그러니까 뭐야? 해방되는 것.. 어디서부터 해방되는 것? -어떤 물질적인.. 소유욕으로부터.. -그렇죠.. 칸트가 우리에게 알려준 가장 큰 핵심 테제는.. 그겁니다.. 물질의 물욕으로부터 해방될 권리.. 그 관념론.. 그렇게 어렵게 만들어 놓은 게 그 관념론.. 그 관념론인거죠.. 물욕으로부터 해방될 권리.. 칸트가 그래서 물욕을 견지하기 위해서 자기 루틴을 꼼꼼하게 짠 이유에요.. 임의적으로 자기 루틴이 무너지면 그 사이에 여유 공간에 물욕이 계속 침범하거든.. 자기의 스케줄을 꼼꼼하게 짜다보면 틈이 없잖아? 그러면 안들어와 이게.. 안들어온다고.. 스님들이 왜 빡빡 미는 거에요? 똥팔씨? 스님들이 왜 빡빡 밀죠? 패션인가요? 고유성을 지우는거죠.. 고유성을.. 그러면 머리카락이 뭔데 고유성이야? 머리카락이? 개성을 조작할 수.. 얼굴은 조작할 수 없는데 머리 스타일은 자기가 조작할 수 있잖아? 그러니까 개성을 지우는거죠.. 개성을 지우면서 자기가 뭐하고 싶은거야? 그 물욕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날려고 하는거지.. 그걸 해탈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그런거죠.. 그건 금욕만은 아니죠.. 그리고 늘 얘기하지만.. 금욕도 하나의 욕망인데.. 싸구려 욕망이라서 욕하는거죠.. 생산할 수 있다면.. 스스로 머리 막.. 빡빡 밀고.. 내가 스스로 나를 생산할 수 있다면 존재의 확실성을 보증하는 토대는 확실합니다. 왜냐하면 작품이 나의 토대거든.. 작품이.. 그래서 똥팔씨한테 잔소리를 자꾸 하는데.. 작품이 나의 토대란 말이에요.. 작품이 나의 토대면.. 그러면 존재의 확실성이 확실한거죠.. 그렇게(?그런게?) 쌓인다면.. 더 좋죠.. 그러니까 각자가 꾸준하고 지독하게 요구하는 거에요.. 그러는 수밖에 없다.. 끝까지 가야한다.. 이런 뜻입니다.. 그래야지 유심론의 한계를 벗어나서 물질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에요.. 버클리가 힐라스와 필로누스의 세 가지 대화에서 쓴 말 인데요..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주장은 만인이 다 갖고 있네.. 따라서 사람들의 주장이란 천박하고 혼란한 것이네.. 그래서 나의 주장은 막.. 나의 입장은.. 내 생각은 달라.. 이렇게 이야기 하는 사람들 중에.. 고민하고 사유하고 존재란 무엇일까.. 삶의 의미를 질문하는 사람은 단언컨대 없습니다.. 없어요.. 내 생각은 말이야.. 없어.. 존재의 의미를 묻는다면 그렇게 유치하게 말하지 않죠.. 주장을 닫아야 되죠.. 존재의 의미는 복잡하고 어려워요.. 만지기 까다롭거든.. 왜? 중요한 거니까.. 그러면 주장을 닫고 배워야지.. 주장을 닫고.. 안배우려고 하는 게 주장이죠? 그래서 버클리가 얘기하는 거에요..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주장은 만인이 다 갖고 있네.. 모든 사람은 다 주장을 갖고 있네.. 다 알아.. 다 안다고 착각해.. 그것을 착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확실하게.. 이거 휘었어..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애들도 다 아는 거.. 그래서 싸구려 지식만이 확실성의 토대로 만드는 것이죠.. 유치합니다.. 그런 사람들.. 주장이 아니라.. 사유할 수 있는.. 공부할 수 있는 몸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 공부할 수 있는 몸이 되기 위해서.. 꾸준히.. 또.. 지독하게 꽂아 놓는거죠.. 공부하기 어려우면 지하철에서 스마트폰 안보고.. 이 팥빵.. 이 방송이라도 꼽아놓으면.. 그래도 좀 다르잖아요? 사유하게 되니까.. 존재의 의미를 계속 물어보잖아? 나는 매 방송마다 하는데.. 존재의 의미.. 계속 하잖아? 그러면.. 매 방송마다 하면.. 그래도 깨어있을 수 있잖아요? 자꾸 진통제에 현혹되지 말구요.. 살 수 있는 것은 감사한 일이에요.. 감사한 일은 대충하면 안돼요.. 안됩니다.. 결단코 대충해서는 안돼요.. 뭔가를 이겨낼 게 있으면 이겨내야죠.. 장애물이 있으면 뛰어 넘어야죠.. 왜 도망갈려고만 하고 숨을려고만 해? 넘어야죠.. 넘고.. 극복하고.. 그러다보면 환희도 느끼고 자기 스스로를 대견해 하고.. 어느 정도 높이 올라가면서 밑에를 볼 때 쾌감은 장난이 아니고..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간결하게.. 극복해가고.. 주조해나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버클리를 통해서 우리들이 물욕에 빠져 있는 일상이.. 재고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그 자신을 망치는 일이라는 것을 반드시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금욕적으로 되라는 얘기가 아니죠? 다시 말하지만.. 금욕은 그 대안 중에 가장 싸구려 대안입니다.. 생산하라.. 생산하라.. 그걸 기억하라.. 참아라..가 아니라.. 생산하라.. 꾸준히.. 자기 일상을 작품처럼 늘 생산해야 한다.. 끝.. -네, 생산합시다.. 저도 맨날 생산 하기는 하는데.. 아무튼.. 그러네요.. 생산을 좀 많이 해야겠습니다.. 많이..라기보다 잘 해야겠네.. -꾸준히죠.. 많이도 잘하는 것도 원하는 게 아니죠.. 우리가 원하는 것은 타자에게.. 우정에게 원하는 건 그런건 아닙니다.. 그러니까 성실함과 정직함이 존재 실력의 가장 기본 토대니까.. 두 가지만 있으면 사실 삶에.. 존재에 문제는 없어요.. 정직함과 성실함만 있으면.. 유식함? 현명함? 이런거 별로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그것도 성실함과 정직함에서 나오는 거에요.. 뭔가를 제대로 잘 안다.. 정직하게 읽으면 모를 수가 없어요.. 존재와 시간을 읽는데 있잖아요.. 모르겠어요.. 아 어려워요.. 저는 그 말이 약간은 이해가 되지만.. 또 많은 부분은 이해가 안갑니다.. 왜냐하면 모르기도 어렵거든.. 모르기도 어려워요.. 성실만 하면.. 그런데 그걸 번역하거나 해석하는 사람들을 보면.. 야.. 진짜 대충하는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버클리를 이야기 하는데 버클리를 하나도 느끼질 못하는구나.. 뭔가를 개선하고 싶고.. 얘가.. 뭔가를 유지하고 싶은지는 하나도 보지를 못하는구나.. 이러면서 야.. 철학자를 느끼지도 못하는데 무슨 철학을 한다고.. 이런.. 한심하기도 하고 그러는데.. 여하튼 우리는 그런 사람이 되면 안되죠.. 우리가 비판하는 대상하는 대상자가 되면 되겠습니까? 내가 비판하는 대상이 있다면 나는 그 대상하고 번외여야되지.. 그 사람이 되면 안되지.. 먼저 비판하는 대상이 있어야지.. 비판하는 대상도 없다? 이건 완전히 썩은거야.. 나는 두루뭉술한 삶이 좋은데요? 어.. 너 썩은거야.. 썩은거야.. 완벽한 곰팡이.. 왜냐하면 세계가 이렇게 오물들로 넘치는데.. 무관심하고 무능하니까.. 완벽한 곰팡이라는거지.. 두루뭉술하게 사는 게 좋은 인생이라고? 누가? -기생.. 하는.. 삶.. -그렇죠.. 그러면 곰팡이도.. 좋은 인생이다.. 씨.. 반응하는 것은 나쁜 인생입니다.. 생산하는 것이 좋은 인생이죠.. -네, 공식적으로 생산합시다.. 비공식적으로 생산하지 말고.. 자, 이렇게 해서 우리 조지 버클리 마감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다음은 흄이네요.. -네.. 흄 시간으로 한번.. -저 혼자 했었으니까.. 똥팔씨랑 같이 한번 읽어봅시다.. -네, 저도 오늘 물욕으로부터 좀 벗어나.. 카트를 끌지 말고 바구니를 끌고 생산합시다.. -아, 카트 버리겠다고? 좋은 말이네.. -아, 저는 카트 안끌어요.. 항상 바구니를 들고 다녀요.. 많이 안담으려고.. 허리 아파서.. 조금씩 담아야 돼.. 그때그때 필요한 것만 사요.. -그런데 더 허리 아프잖아요? 바구니가? -아니, 그래서 무겁게 안산다고.. 그때 그때 필요한 것만 매일 매일 사지.. -매일 매일 사는 거나.. 삼일에 한 번 가서 사는거나.. 똑같은 거 아니야? -지나가는 길이니까.. 어차피.. 동네에 있으니까.. -그래요? 아니 나는.. 나는 한방에.. 일주일에 한 번만 딱 보고 아예 마트를 안가는 게 더 훌륭한 방법 같다는 생각을 해서..얘기하는 거에요.. 우리 외떨이 쓴 책 있어요.. 거기에 이제.. 나폴리의 장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파스카리엘로라는 장인.. 그 장인이 일주일에 한 번 장을 봐요.. 일주일에 한 번 장을 봐서.. 그 일주일의 생산량을 집에 딱 쟁여놓고 그것 딱 먹고.. 일주일에 한 번씩만 장을 봅니다.. 안그러면 그 많은 노동시간을 그렇게 유지할 수가 없어요.. 이해 갔죠?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는건 그런거에요.. 딱 한번만 장을 본단 말이에요.. 그러면 딱 한번만 물욕적인 것에 개방할 수 있죠.. 나머지는 다 내것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는거죠.. 자주 보면 안좋아요.. 더 사게 됩니다.. 아무리 바구니가 작아도.. 더 사게 돼.. 한 방에 사면.. 한 방에 사면 모자라는 제품은 안 쓰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어떻게든 있는 재료로 하게 되고 그렇거든요? 그런데 뭐 밥이 맛이 없어질 수는 있어요.. 그렇게 하면.. 그래도 좋은 방법은 그게 더 좋은 방법 아닐까? 라는 생각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네.. -시간을 아낄려고 하는 거에요.. 존재의 시간을.. 일 주일에 한 번 장 본다는 건.. 끝. -네, 자 이렇게 해서 마감하도록 하겠습니다..
온갖 사물의 이미지들로 수평선을 이루는 드넓은 충동의 바다..
쉼없이 밀려오고 다시 나가는 진동의 반복.. 이십사시간.. 삼백육십오일 전부.. 태어남.. 그것은 엄마 뱃속으로부터의 난파..
끊임없이 유영할 수밖에 없는 던져진 존재.. 다리의 움직임을 의도하는 것은 바로 우리들이라.. 버클리는 말하지만..
다리의 사용법을 모르는 존재.. 신국을 향해 가는 필라소피오가 지나간다.. 어떡할텐가? 목놓아 외치고 손이라도 힘껏 뻗어볼텐가?
배가 구원일 수 없지만 신국을 향해 함께 노 저어 가보자.. 갑판 위에서라도 두 다리로.. 태양을 맞이해보자..
인간은 그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부단히 원하며 그가 해야하는 것 이상을 할 수 있는 존재다.. -조지 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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